밥상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 로컬푸드 운동 ‘꾸러미’, 먹거리 지키러 ‘언니가 간다’

제철 채소 꾸러미 2012.02.01 14:29

얼마 전, 설날 특집으로 한국방송에서 ‘도전!전국 이장님 골든벨’을 방영했다. 전국의 이장님 100분이 모여 지역자랑, 솜씨자랑, 실력 자랑을 펼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자, 여러분들도 마지막 골든벨 문제에 도전해 보시라.

“최근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에 대비해 이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해서 유통비용을 최소화하고. 같은 가격에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얻자는 목적의 운동입니다. 농촌을 되살리자는 취지도 있는 이 운동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로컬푸드 운동’이였다. 다행히 그날 춘천의 이장님께서 골든벨을 울렸다. 이렇듯 ‘로컬푸드’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쓰이면서 이제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정작 용어에만 그칠 뿐 아직까지 우리의 먹거리 흐름에서 ‘대세’를 잡지 못하고 있다.

   
▲ 언니네텃밭 홈페이지.

‘로컬푸드 운동’, 가족소농의 생태적 농업방식 기반 지역 운동

한국방송에서 정리한 로컬푸드 운동에 대한 정의는 깔끔하지만, 정작 중요한 생산규모와 계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로컬푸드는 엄밀히 말하면 가족 소농들이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제철 먹거리를 말한다. 무엇보다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까 종종 대형마트들이 채소부스에 작은 코너를 할애해 로컬푸드를 내세우며 쌈채소 몇 개를 놓고 파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훌륭한 뜻을 가진 로컬푸드 운동이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함정도 있다. 자칫하면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은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로컬에서 어떻게 생산된 푸드인가를 묻지 않고, 어떤 로컬을 살려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로컬푸드는 가족 소농들의 생태적(제철생산, 비시설생산)농업 방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농촌 지역이 건강해 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로컬푸드의 논의는 로컬과 푸드의 조화가 아니라 ‘푸드’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흔히들 무농약이나 유기농 마크가 있으면 안심하지만 이는 국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증제도일 뿐이며 생산기술 차원에만 먹거리 담론을 묶어 놓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생산과 소비의 근본적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로컬푸드 운동이다. 그리고 전세계 각국 정부와 지자체들이 로컬푸드 시스템을 농산업과 보건의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빠르게 제도로 안착시키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밥상을 가장 심하고 죄어오는 미국마저도 로컬푸드 제도 안착에 힘을 쏟고 있는 중이라 하니, 중요한 것은 ‘한식 세계화’가 아니라 로컬푸드 벤치마킹이 아닐까 싶다.

지역사회지원농업(CSA),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모델
농민과 소비자가 동반자로서 농사의 위험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

여하튼 로컬푸드의 가장 대표적인 실현 수단은 농민장터(farmers' market)와 지역사회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을 들 수 있는데, 이번에는 CSA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CSA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생산자-소비자 간 직거래 모델이다.

1990년대 들어 생산자-소비자 관계를 근거리에서 새롭게 맺고자 하는 움직임(로컬푸드 운동)이 진행됐는데, 이를 CSA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인 혹은 몇 명의 생산자(마을 단위)가 수백 명의 소비자에게 다양한 농산물을 제공하며, 작부계획부터 농사일, 체험활동, 수확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이 참여해 농사에 따르는 위험과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형태를 일컫는다. 즉, “농업이 안고 있는 경제적 위험부담(풍작이든 흉작이든 농산물 가격과 수량의 불안정성)을 농민만 떠안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소비자와 함께 나눠 지는 동반자 관계” 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 농가나 여러 농가가 다수의 소비자와 미리 계약관계를 맺고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1년 동안 생산할 농산물의 품목과 수량을 미리 결정한다. 돈은 농사철 시작 전에 미리 선불로 낸다. 그리고 일년 내내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공유한다. 그리고 생산과 배송과정에 소비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자발적 또는 의무적 일손돕기, 체험, 수확 정도 또는 농지의 공동임대나 주말농장 포함)로 참여한다. 이는 비교적 강한 형태의 CSA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유기농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충남 홍성지역의 몇몇 개인농가와 경기도 이천의 콩세알 등이 비교적 이 모델에 가깝다.

   
▲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에 모인 생산자와 소비자 회원들.

여성농민들의 생산공동체 ‘언니네 텃밭’
제철채소와 공동체 소식, 요리법이 담긴 ‘꾸러미’로 이루는 이해와 소통

하지만 최근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있는 CSA모델은 ‘꾸러미(박스)’ 형태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언니네 텃밭은 한 마을 단위에서 함께 농사짓고 생활하는 여성농민들이 생산자공동체를 꾸리고, 소규모 텃밭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과 1차 가공한 먹거리(두부,장아찌,김치,건나물,장류 등)를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사업이다. 특히 제철채소를 중심으로 꾸러미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지역)의 여성농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한 채소, 두부, 달걀, 콩나물, 김치 등을 매주 1회 도시 소비자에게 보내면 도시 소비자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킨다는 마음과 생산농가를 지원한다는 의미로 회비를 지불한다. 또 생산자들은 매 꾸러미마다 생산공동체의 소식과 요리방법 등을 적은 편지를 넣어서 소통을 시도한다. 이 편지를 통해 마을의 농사현황과 생산물의 상태가 왜 이 ‘꼬라지’가 났는지 도시 소비자들을 이해시킨다. 대형마트에서 번듯하게 포장되어 팔리는 농산물에 익숙한 도시 소비자들은 가끔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농사란 본래 이쁘장한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꾸러미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 경북 고창 하늘땅공동체 모임.

‘1억 농부만 살아 남으라’는 명령에 저항하는 ‘언니들’
여성농민과 텃밭이라는 소외의 중심에서 빚어지는 대안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농업은 늘 대규모를 지향해 왔고, 그 정책들은 지금도 ‘1억 농부’ 만들기 등으로 꿋꿋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밀어줄 농민 밀어주고 나머지는 탈농 시키려는 ‘몰빵 정책’은 지금의 한국농촌을 더욱 어렵게 만든 근본원인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언니네텃밭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을 공동체를 단위로 소농들의 협업 농업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촌에서 보조자의 역할에 머물렀던 여성농민들이 주체로 선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농민들의 손길(농사와 요리)은 언니네텃밭 사업의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가정과 마을 내에서만 해먹던 전통음식들이 꾸러미 품목으로 들어오면서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 되었고, 무엇보다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손맛’을 꾸러미 소비자들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농사의 규모를 텃밭 규모로 제한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제초제가 아닌 김매기를 하고, 외국의 종자를 사다 심는 것이 아니라 씨앗갈무리(채종)가 가능한 규모는 텃밭에서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찬거리를 구하던 텃밭(kitchin garden)이 이제 ‘다품종 소량생산’을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적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 텃밭이야 말로 글로벌체계에 종속된 현재의 농업에 대항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강원도 횡성 오산공동체에서 꾸어놓은 우리콩 메주.

먹을거리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묻지마!’
먹을거리의 탄생과정을 속속들이 보고, 확인하고, 함께 지키자

제철 꾸러미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무조건 받아먹기만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만 머물 수 없게 만든다. 꾸러미를 받으려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역을 살려야 하는 미션수행에 뛰어 들어야 한다. 일단 꾸러미를 받으려면 언니네텃밭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는 20여분간의 동영상을 의무 시청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받아먹는 꾸러미가 어디서 생산되고 누가 생산하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등을 떠밀면서 그 마을에 꼭 가보도록 부추긴다.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입속으로 들어가는지 ‘묻지마!’를 외치는 기존의 식품회사들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쓰고 있다. 생산자와 얼굴 맞대기와 마을 방문, 소비자 교육 등을 통해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몫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내가 요리를 하겠다는 의자가 없으면 매주 배달되어 오는 꾸러미는 공포 그 자체다. 외식과 반조리식품에 익숙한 생활이라면 생활 자체를 바꾸어 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니 말이다. 제대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우리에게 철들기를 요구한다.겨울에 접어 들면서 제철 꾸러미는 한결 가벼워졌다. 이유는 잘 말려둔 묵나물과 겨울 먹거리들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본래 생채소와 과일이 나지 않는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의 밥상을 보자. 겨울 밥상에 넘쳐나는 푸른 채소와 시설재배 과일이 넘쳐난다고 하여 그 밥상이 과연 ‘철든 밥상’인지 말이다. 철부지들이 넘쳐나는 세상, 혹시 철든 밥상을 받아먹지 못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닐는지.

정은정 (아녜스, 농촌사회학 대학 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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