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모시고 있습니까? '천연의 농부' 한원식

광주에서 두 시간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자면야 그 길을 어찌 멀다 말하랴. 하지만 비포장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은 그 집을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진 아주 먼’곳으로 느끼게 했다. 순천 승주 같은 행정구역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한원식씨의 주소지는 자연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누군가 살다 떠난 집. 오랜 세월 버려져있던 집이다. 그래서 그는 “길가다 주운 집”이라 말한다. 그 집을 대충 고치고 손봐서 산 지 6년 됐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던 옛사람의 말처럼 앞마당에선 조계산이 마주 바라보인다.

이 깊은 산 속에서 그가 가진 건 이 자연 뿐.

어둑신한 방안엔 촛불이 켜져 있었다.

“전기가 무슨 소용 있어요?”

그는 ‘불필요한 것들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전기조차도 그에겐 불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걸까. “아니요, ‘자족성’이 빠진 무소유란 한갓 말장난이지요. 저는 다만 불필요한 것들을 덜고 덜어내는 ‘가난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불편하지 않은가,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는가, 그런 질문은 그에겐 우문이었다. 불편이니 적응이니 하는 말 자체가 도시인들의 엄살떠는 말일 뿐. 그는 사람이 시도하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 먼저 생각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이 할 일이란 씨 뿌리는 일, 즉 밥 짓고 밥되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는 그는 이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은 충청도. 전라도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은 걸까. “벼농사를 제대로 지어 볼라고 옮겨왔던가, 좋아하는 감을 실컷 먹을라고 옮겨왔던가, 그게 무어 중요할라구, 허허.”

감 이야기가 나왔으니 똥 이야기를 해야겠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왔을 땐 칙간이 없었어요. 감나무 뒤에 가서 ‘똥 모심’을 하면서 똥을 모신 감이니 얼마나 맛있으랴 했지요. 그런데 웬걸 너구리가 저녁마다 와서 다 잡수시네? ”

원래 어린 아이가 누는 건강한 황금빛 똥은 개들도 알아보고 좋아한단다. 그러니 개가 똥을 모실 수 있게만 똥을 누면 그는 건강한 사람일 것. 그는 “똥은 안 늙는다”고 말한다. 다만 사람이 잘못 살아 똥이 늙어지는 것일 뿐.

똥이 안 늙도록 잘 살려면? 그의 대답은 “밥 모심을 잘해야 한다”. 밥을 먹는다가 아니라 모신다? ‘밥 모심’은 단지 밥을 취取하는 게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것을 이른다.

“밥 먹는 시간이 10분이 뭐에요? 밥을 모시는 시간은 내가 되는 시간이고 나를 맞이하는 시간인데….”

그는 “한 술에 140번 정도는 씹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에이 어떻게 140번이나?”반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쫌 봐줘서 130번 정도는 씹으세요.”

그는 “소식小食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씹느냐 안 씹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쌀 속에는 140여가지 미량원소가 들어있어요. 우리 혀는 이 맛을 다 느낄 수 있지요. 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니 밥상에서 저절로 축제가 일어납니다.”

그는 밥 중에서도 “현미밥을 모시라”고 한다. “서양의 영양학은 칼로리 개념만 있고 ‘작용’이란 개념이 빠져 있지요. 현미는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지만 흰쌀은 썩어버리잖아요. 흰쌀에는 작용 성분이 제외돼 있어요.”

도시인들에게도 말한다. “당장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밥그릇농사라도 제대로 지으며 살아라.”

그에 따르면 잘 짓는 밥그릇농사는 현미잡곡밥을 소식하는 것이고, 하루 2식하는 것이다. 2식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게 건강에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적게 먹는 삶, 과소비하지 않는 삶,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눔’이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지향이다.

그러면  ‘올바른 밥모심’을 실천하고 사는 그는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밥모심’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그는 “제 몸이 아주 잘 빠졌어요”하고 농을 건넨다. 짓궂은(?) 사람이 있어 “한 번 벗어보세요” 하면 정말 웃옷을 벗는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삶’처럼 ‘군더더기 없는’강건한 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의 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옷을 벗는다든지 그 모든 행위가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런 그의 무구함이다.

지금은 그렇듯 건강한 몸이지만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몸 어느 한 구석 안 아픈 데가 없이 온갖 병치레가 심했단다. 그 아픔을 통해 그는 ‘앓이’를 터득했다.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병’이란 말을 쓰지 않고 ‘앓이’라고 한다. ‘내 몸이 스스로 알아차려 알아서 한다’는 뜻. 병이라 하면 물리치고 제거하고 몰아낼 적대적 대상으로 보게 되지만 앓이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라는 의미고, 급하게 죽지 않고 더 살게 몸속의 독소를 가장 약한 것으로 몰아주는 의미라 한다. 그는 ‘앓이’를 통해 우리 몸의 가장 취약한 데를 알 수 있으니 ‘앓이’를 지극정성으로 잘 모시면 그로부터 ‘살림’의 힘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건강’을 좇지만 그는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도 믿는 그는 한 때 관행농으로 성공해 돈도 많이 벌었지만 서른한 살 되던 해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데 농약으로 생명을 해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는데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어요. 근데 한 번도 우리 손주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신 적은 없어. 다만 ‘우리 손주 바른 길로 진리로 이끄소서’라는 기도였지요. 그래서 내가 우리 할머니 덕에 바른 길로 이끌렸는가 모르지요.”

그렇게 배추농사를 짓다가 어느 해 큰물이 져서 배추밭이 다 잠겨버렸다. 상심해서 밭에 나갔는데 다른 배추들은 다 널부러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싱싱한 배추 한 포기가 있더란다. 바로 밭 귀퉁이 갓자리에 심은 배추. 갈아지지 않은 땅의 배추였다. 그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배추스승’이라 일컫는 이유다.

“갈아지지 않은 땅에는 순환이 있고 숨통이 열려 있어 물이 차있어도 안에서 숨을 쉰 거지요. 땅을 가는 것은 흙의 모둠성과 온전성을 해치고 지렁이 딱정벌레도 죽이는 일이에요.”

그때부터 그는 ‘땅을 갈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다. 그 다음해 갈지 않은 밭에 배추농사를 다시 지었다. 농사는 잘됐으나 배추값이 폭락한 때여서 폭삭 망했다.

“배추밭 숨통은 터졌는데 왜 내 삶의 숨통은 안 터지나”는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돈이더란다.

“돈이 무엇이간대? 결국 날 때부터 없는 것,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부터 그는 ‘돈을 꾸지 않는 삶’‘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 왔다. 그들 부부에겐 통장이 없고 저축이 없다. 노후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는 믿음이 가장 든든한 ‘빽’일 뿐.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다보니 그는 사고 파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
배추가 생명인데 어떻게 값을 매기나요. 값에서 욕망이 생겨요.”

그 욕망을 없애는 것은 조금만 소비하고, 남는 것은 나누는 삶이다. 그가 ‘가난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유다. 비현실적이라고?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이 근처에만 해도 10여 가구 생겨났다. 그렇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우리 식구 먹고 남는 게 있어요.”

그 남는 것은 어디다 쓰나? “님 맞이하는 데 쓰지요.” 그 님은 손님이다.

그의 집에는 농사 배우러 오는 이들, 앓이하는 이들이 늘 들락거린다. 그가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러 오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 모두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누가 오든 흔연히 ‘밥상’을 차려내 ‘밥모심’을 같이 한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의례적 말엔 손사래를 친다. 덧붙여 “정 그러면 똥모심을 잘 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농사도 그렇고 밥모심도 그렇고 사는 게 날마다 축제이다.

“노동이 아니라 놀이니까 신명이 나고 춤추듯이 하지요. 밭에서 일하는 것도 춤사위요, 똥장군 지고 가는 것도 춤사위지요. 자연의 모든 것이 춤사위에요. 똥거름 뿌리면 똥이 ‘너울춤’을 추며 날아가잖아요. 힘들 때야 왜 없겠어요. 춤추는 것도 되게 추면 힘들잖아. 다만 그 춤사위를 잘 넘나들어야지요. 쉴 때는 쉬어주고…”

마음 없이 일하는 것은 억지춤이란다. 억지춤추기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느냐. 뭐든지 자연스럽게. ‘자연의 농부’인 그가  들려주는 말이다. <
남신희 기자>

연습 없는 축제, 모듬살이 -승주 한원식

연습 없는 축제, 모듬살이 -승주 한원식

차르륵 사스락 억새 스치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흙 길을 따라 움찔거리며 덜컹거리며 밤길을 더듬어 얼마나 올랐을까. 어둠 끝에 한 사람이 들고 서 있는 작은 등이 보였다. 흙 길 사이로 비스듬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집이 보였다. 전기도 쓰지 않는 집, 해떨어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집, 손님 마중하느라 늦은 밤중까지 촛불을 세 개나 밝혀 놓았다.

자기다워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집


“이 밤중에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겄네. 출출할 텐데 이것 좀 들어보시우.”  남녘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단감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침샘이 짜르르 하도록 단물이 입안에 가득했다.

“지금 머무는 이곳이 모두 구만 오천 평이지. 여기에는 큰 것 작은 것으로 가득하게 갖춰져 있어. 자연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같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 한 아름인 모습이라 했던가. 남녘 끝자락 조계산이 마주 보이는 전라남도 승주땅, 깊은 산 숲 자락에 둘러 쌓인 이 곳에 깃들어 사는 한원식 님은 필시 자기다워 아름다우리라.


한원식 님은 고향 공주를 떠난지 이십 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칠곡서도 살았고, 제천에서도 머물렀다. “저절로 흘러 오게됐어. 인연이 있어 이곳에 머물게 된거야.” 삶의 도반인 안혜영 님과 승주에 머문지 벌써 8년이 된다. 늘 빈 손 뿐이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좋은 인연들과 초록 생명들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유나 무소유의 문제는 아니야. 자족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어. ‘고맙다’는 것은 ‘고루고루 맞이한다’는 뜻이야. 몸으로 사는 일 자체가 매순간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야.” 한원식 님은 모든 순간을 거스르지 않고 맞이하여, 몸을 받들며 공손하게 자연에 깃들어 자연이 되었다.

‘얼’은 어울림을 말하고, ‘글씨’는 씨앗이 되는 글을 뜻하고, ‘말씀’은 쓰임을 받는 말을 의미한다. 사람의 말이 적절한 자리에서 쓰임이 되고, 함께 어울려 숨통 트이게 하고, 잘리지 않은 전체를 이루어 비로소 사람답게 된다. 이렇게 ‘통’을 이루면 어그러짐이 없어 날마다 기쁨 가득한 축체를 경험한다. 그는 지금 축제 중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일이 아니라 놀이야. ‘일 놀이’지. 사는 일에 군더더기가 없어. 쓸데없는 것을 지니면 일은 괴로움이 되는 거야. 어렸을 때 아이들 해지는지 모르고 놀잖아. 아이들은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야.”

밥 짓고 밥 먹는 몸

더듬거리며 까만 밤에 들어오느라 볼 수 없었던 좁다란 앞뜰에는 가을걷이한 곡식들이 널려 있다. 아기 손바닥만한 옥수수, 땅콩, 땅심을 받아 머리에 얹은 붉은 흙색깔 수수, 붉디붉은 가슴을 다 내보인 고추, 단맛이 든 대추알, 녹두와 팥, 메주콩도, 야무진 토종밤도 윤기 나게 모여있다. 참 곱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색색의 곡식들은 신명난 농부의 가슴이며 몸인 듯 싶었다. 집 모퉁이 한쪽에 거위와 토종닭들이, 집 마당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비탈에는 토종벌통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갈꽃을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울 삶을 이루면서 느릿하고 한가로이 가을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쌀 짓고 밥 먹어야지. 아침은 몸에 쌓아둔 기운을 소비하는 시간인데 밥을 먹으면 되레 무기력해져. 점심 전까지는 일하고 움직여야해.” 한시도 비워두지 않고 배 채우기에 허둥거리는 동안, 밥은 습관에 따라 끼니를 그저 때우는 것이 되고, 결코 제 몸이 될 수 없는 것을 삼키는 셈이다.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고 밭일에 함께 나섰다. 폭 좁고 길쭉한 밭은 땅콩을 심었던 곳이다. 여기에 우리 밀 씨앗을 뿌린다. 농사의 원칙 중 하나는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이다. 모듬살이가 깨지고 죽기 때문이다. 밭에는 땅위 생명과 땅 아래 생명이 함께 어울려 숨을 쉬고 있다. 골을 파서 씨앗을 땅 속에 묻지 않는다. 밭 위에 씨앗을 그냥 슬슬 뿌리고, 퇴비를 만들거나 발효시키지 않은, 여름내 말려둔 풀을 지게 짐으로 날라 그 위에 덮는다. 그것은 마른 풀 밑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밭에서 해야할 몫을 남겨두는 일이다. 발효된 퇴비를 직접 뿌리면 지렁이가 제 몫을 잃는다. 사람이 다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고 교만한 일이다. 농사는 지렁이, 미생물과 함께 짓는 것이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 속 모듬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 질은 하지 않아.” 너무 잘하려는 의욕 때문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가난한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고, 자신의 몸까지 죽이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밭에서 난 곡식들은 값을 매겨 팔지 않는다. 씨 뿌리는 일을 하지만 씨앗의 심부름을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심부름 잘하면 벼와 곡식들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이미 만물이 모듬져 가고 있고, 어우러지는 오고감이거든. 그런데 값을 치르는 거래가 되었어. 절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거래가 이루어지니까 물질과 세상에 종속이 되는 거야.” 종속되지 않는 방법은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에 깃들고, 자연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배추가 깨우쳐준 모듬 삶
한원식 님은 농사를 18살부터 배웠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할 정도였어.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도 있었어. 농사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 축사, 원예, 논농사도 두루 배웠어.”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수입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34살 무렵부터 유기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그 길로 관행농을 접었다. “돈벌기 위해서 농사짓는 것을 포기했어. 그러니 결국 그 동안 끌어다 쓴 빚을 갚지 못할 형편이 되었지.”

이듬해 유기농 배추를 많이 심어서 빚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배추는 정말 잘 자랐고, 값도 한창 오른 때였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배추밭은 싹 쓸려갔고, 허망한 마음만 남았다. 그런데 그 난리 통에 한쪽 구석 몇 포기가 살아있는 것이 보였다. 갈아엎는 곳에는 숨통이 없어 배추가 뿌리부터 죽어갔고, 갈아엎지 않은 곳에는 숨통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에 이듬해 땅을 갈아엎지 않고 배추를 두 배로 심었다. 예상대로 배추는 잘 되었는데, 이번엔 값이 떨어졌다. 팔지도 못하고 버려 두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때 한원식 님은 자신이 못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되물었다. “과거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어. 자연에는 돈이 필요 없지 않은가. 벼와 곡식은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뿐이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 돈은 허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 한원식은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먹는 것을 바탕으로 밀농사, 벼농사, 다양한 곡식들을 지어 자급해서 사는 방식으로 전환했지.” ‘땅을 갈아엎지 않는’ 자연농법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다 쓸어간 밭에서 만난 ‘배추’는 인생을 바꿔 준 스승이었다.

밥 모심, 똥 모심
모든 일은 ‘밥 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밥이 몸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일이니,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 점심 시간, 이집 안주인 안혜영 님이 단감과 찐 옥수수 바구니를 상위에 얹으셨다. 쌀로 지은 것만 밥이 아니고, 계절음식 하나 하나를 다 밥으로 여긴다. 무엇이든 공손히 모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옥수수를 오래 씹으니 고소한 단물이 고였다. 이어서 마늘쫑, 호박무침, 김치, 마른 김, 미역국, 민물조개를 삶아 무친 것, 태어나서 처음 본 호박꽃찜, 그리고 푸성귀가 소쿠리 가득 밥상에 올라왔다. 순무, 무청, 배춧잎, 갓, 민들레, 쇠무릎, 카프리, 꼬들빼기잎… 가장 특별한 음식은 현미에 여러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현미를 기본으로 팥, 옥수수, 메밀, 율무, 통밀, 보리, 밤, 잣, 조, 검정깨, 수수, 콩 등이 들어갔다. 현미와 다른 곡식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이 밥상의 모든 음식은 ‘백 오십 번’ 정도 씹어야 한다. 반찬은 반찬대로, 푸성귀는 푸성귀대로 신선한고 생명 어린 빛깔을 느끼며 그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들여 메통쌀(현미)을 씹고 또 씹어 몸을 이루는 거야. 흰쌀은 오래 씹으면 무력해져. 흰쌀은 깎아 내고 쪼개서 절반을 버리는 거야. 메통쌀에선 싹이나. 아름다운 것은 자라나지.” 현미를 먹으면 절반만 먹어도 된다. 온전하게 먹으니 힘이 넘친다. 흰밥은 보기엔 좋지만 둘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깎아내 절반을 버린 셈이다. 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먹을 곡식을 다양하게 하면 각각 소비하는 양도 최소로 줄일 수 있고, 그 만큼 여럿이 나눠먹을 수 있게 된다. 지극한 ‘밥 모심’은 나눔의 실천이고, 생명을 나누는 일이다.

밥 모심은 똥 모심으로 이어진다. 인디언 천막집 닮은 이 집 뒷간에 앉으면 아래쪽 논밭이 보이고 먼 산이 안긴다. 뒷간은 한해 농사를 짓는 기본이 담긴 곳이다. 뒷간에 부려놓은 똥은 거름이 되고, 풍성하고 기름진 논밭이 되어 충만한 곡식을 키워내고, 그것은  다시 밥상에 올라 나와 너의 몸이 되고 마음과 생각이 되고, 삶이 된다. 충만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마음공부가 따로 없어. 똥을 잘 누면 되지.” 똥이 밥이 되고 다시 몸이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똥을 저버리는 삶에는 모듬살이가 깃들 수 없다.


똥 장군에 똥 담아 지게에 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흔들 춤 저절로 나고
한바가지 두 바가지 뿌릴 때마다 너울너울 춤추며 멀리퍼지네
멀리 퍼진 통 냄새 땅에 잠길 때 벌거숭이 지렁이 잠을 깨우네
옆에 자던 새싹들 같이 잠깨어 지렁이 새싹들 한 마음 되어
하늘양식 내렸다 소리치면서 흔들 춤 너울 춤 같이 춤추네
건너편 바람이 바람 춤추네  (한원식, 똥 풀이)


  온갖 풀과 열매와 곡식에 아무런 차별이 없고, 내 것 네 것이 없다. 사는 일은 어우러지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것을 모시고 받들며 사는 일이다. 밥 모심, 똥 모심, 일 모심, 잠 모심… 모심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몸에 생긴 병도 모신다. 병은 우리말로 ‘앓이’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앓이를 모신 몸은 스스로 몸의 균형을 이루어 탈난 것을 풀어준다. 그러면 앓이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앓이’를 몰라보면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해 싸우려고만 한다.  밥이 바르면 ‘앓이’를 대적하는 의학으로부터 해방된다. “우리 몸에 병이란 것은 없어. 통증은 몸이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그런 신호야. ‘앓이’는 몸의 독을 풀고 피를 맑게 해주지. 더 이상 ‘앓이’가 할 일이 없으면 슬며시 나가는 거야.”

값을 매기지 않는 모듬살이
“장사하지 말고 되돌려 주어야해. 밥과 땅은 사고 팔 수 없는 거야. 현재 상업농은 살길이 아니야. 나무를 베면 당장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견뎌낼 수 없어. 댓가에 의해 신명이 좌우되면 안 돼. 곡식이 잘 팔리면 신명이 난다하고, 아니면 생명같은 곡식도 갈아엎어 버리는 거야. 이거, 농심이 다 어디로 간거야.” 댓가를 바라고 내 땅, 네 땅으로 나누고, 갈라놓는 동안 모든 것이 깨져버린 것이다. 경쟁하듯 땅을 가혹하게 지배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농업은 유기농의 역사였는데, 이것이 모두 깨진 것이 3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극한 상황까지 가면 다시 새로운 조류가 생기게 마련이고, 지금 그러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것이라 했다.

“삶은 축제인데 축제가 없어진 거야.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 없는 거야. 올바로 작아야지, 작다고 무조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커도 올바로 커야하고.” 희망은 경제가치에 매이지 않는 나눔의 원리에 달려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나누는 축제의 경험이다. “맛과 멋과 흥이 있는데, 혀에서 맛을 보고, 멋은 눈으로 보고, 맛은 만남이고, 멋은 머무름이고, 흥은 일어남이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것이 일상의 축제야. 각자가 축제를 한 짐 짊어지고 모여서 대동축제가 이뤄져야 해. 여기에서 되돌림이 되는 거야. 쌀 농사 중심으로 지은 사람이 쌀을 나누고, 감자를 잘 지은 사람이 감자를 나누는 거지. 이게 사랑방 문화야. 다시 되돌림이 되어 와서 자신의 자리에서 두레가 이뤄지는 거지. 이것이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야. 대동은 가끔, 두레는 날마다 이루어지는 것이야.” 땅을 뒤덮지 않고 나누지 않고 더불어 축제 같은 모듬살이를 짓는 일에 살길이 있다.

“모든 것이 끊어짐이 없는 거야. 나 자신은 끊어지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면 그 삶까지 포함해서 내가 사는 거야. 그런 삶으로 하루를 영원의 삶으로 살아가는 거야.” 사람의 수명은 ‘숫자’로 말할 수 없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으면,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뤄진다. 다른 사람이 이 삶을 받아들여 80살을 산다면, 나는 160살을 사는 것이고, 그 이상도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풀 포기도 한해살이가 아니다. 그 안에 몇 억 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다. 수십 광년을 거쳐온 빛이 풀에 닿아 순간으로 담긴다. 빛은 끊어짐이 없이 오고 또 와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영원한 충만함 속에서 사는 거야. 잘랐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야 다른 생명 되어 살아가는 거야. 최소가 최대가 되고 다시 최소가 되는 순환을 살아가는 거야.”

한원식 님은 숨통 열린 땅에서 숨통이 트인 모듬살이를 하고 있다. “삶은 연습이 없어. 그냥 사는 거지. 자연에 순응하면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사는 거지.” 흔들 춤 너울 춤 함께 추며 축제 같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2004년 11월 <작아>에서)

참 농사꾼, 진정한 자연치유가, 자연농법가 한원식 선생님

자연건강회보에 소개 된 한원식 선생님
탐방기-“참 농사꾼 자연치유가 한원식 선생님”
참 농사꾼, 진정한 자연치유가, 자연농법가 한원식 선생님
2009년 11월 22일 (일) 11:18:25 김규태 kgt7777777@naver.com

<자연건강회(회장 김정덕)에서 발행 하고 있는 자연건강 회보 2009년 10·11월호에 한 선생님 탐방 기사가 실려 소개 한다. 몇 군데 표현을 매끄럽게 수정한 것 빼고는 원문 그대로 옮겨 놓았다. 지난 두 달 동안 한 선생님과 함께 살면서 들은 말씀과 차이가 있는 부분은 ()를 이용 해서 내 의견을 보충 했다.>

땅을 갈지 않고 농약과 제초제 없는 자연 생태의 흐름에 따라 농사를 짓고 사는 분, 국내 처음으로 자연농법을 실천 하신 분, 수 백종의 토종 씨앗을 보존 하시는 분 그리고 난치병 환자들이 끊이없이 찾아 가는 분.

한원식 선생님과의 인연은 10여년이 넘었지만 항상 산골 깊은 곳에 사시는 지라 찾아 뵙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뤘던 탐방을 작심 하고 나섰는데 승주군을 지나 차량 네비게이션도 표시가 없는 이런 곳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라고 생각 하며 산길의 비탈길을 한참 올랐다.

한 쪽 바지단이 올라간 채 서둘러 밭에서 나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시던 선생님을 따라 초가집에 들어섰다.

수확철이라 여기저기 따스한 햇 빛에 밤, 대추, 옥수수, 버섯, 야생초 열매, 나물 등이 말려지고 있었다.

10여년을 살았지만 아직 주인을 알 수 없는 이 집에는 무소유의 삶 처럼 전기불 없는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 콩, 율무, 통밀, 팥 등 열가지 이상 곡식의 반숙된 밥과 산골엔 없을 것 같은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진수성찬.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건네니 “‘감사합니다’는 잘못된 말이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시작 된 ‘감사합니다’는 잘못된 말이다. ‘하늘과 같이 한다. 고루고루 맞이한다’라는 뜻의 ‘고맙습니다’가 옳은 말이다”라고 하신다.

“말도 사실의 말이 있고 꾸며지는 말이 있는데 말에서 풀지 못하면 삶을 풀기 힘들다”라고 말씀 하신다.

1. 선생님께선 자연농법가·천연치유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자연농법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다섯 살부터 27살까지 여러 가지 앓이(질병)로 병원갈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과 함께 살았는데 동네에 일본 의학부를 졸업 하고 농사를 짓는 의사분이 계셨단다. 치료차 다니면서 농사에 관한 여러 가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8살에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이신 김용기 장로님이 정신적 지주 이셨다고 한다.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연장을...

“앓이 중에서 가장 큰 앓이가 무엇인 줄 아는가? 아파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거야. 난 말이야 위궤양과 밤새 가려운 아토피 같은 두드러기, 가난해 먹지도 못 하는데 치통이 치올라 올 때는 참 서러웠어”라고 한다.

관행농을 열심히 하셨지만 실패 하고, 넉넉하지 않은 까닭에 3년 간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시면서 농사 밑천을 마련 하였다.

소 한 마리 값을 만들어 귀향 하여 비닐하우스 관행농법으로 농사도 잘 짓고 돈도 벌기 시작 했다. 그러던 중 유기농을 국내에 보급 하던 유달영 선생님께 유기농 교육을 받기 시작 했는데 그 당시 교육생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서른 살 이었다고 한다.

관행농에서 유기농으로 전환 하려면 점진적으로 농약을 줄여 나가면서 3~5년간 천천히 바꿔야 한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 라고 생각 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인데 사람 몸에 나쁘다면 바로 농약을 주지 말아야지, 알면서도 줄여 간다는 것은 참 잘못이다”라고 생각 하고 바로 무농약을 실천 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작황이 좋지 않아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계속 빚을 내게 되고, 돈 벌이가 안 되어 빚이 산 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해 빚을 갚기 위해 배추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는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콧노래를 불렀다 한다. 그것도 잠시, 운이 안 닿는 건지 장마가 일찍 와 버리는 바람에 큰 물이 배추 밭을 다 휩쓸고 잠기게 되었다.

낙심을 하고 밭을 둘러 보다가 문드러진 배추 가운데 땅이 갈리지 않은 구석진 곳에 쓰러지지 않은 배추 한 포기가 있었다고 한다.

“땅을 갈면 부드럽지만 자연의 질서를 어겨서 숨통이 막힌다. 땅을 갈지 않으면 숨통이 트이는 진리를 발견한 것이지.”

유기농 시작 3년 째인 32살에 배추의 숨통을 발견 하고 그 다음해부터는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되니 배추 값이 싸서 잘 팔리지 않고 빚만 자꾸 늘어 갔다. 그러니 땅 값이 비싼데서 살 수 없으니 버려진 땅을 찾아서 이골 저골을 옮겨 다니다 이 곳에 정착한 지 10년이 되셨다. 지금은 이래저래 땅부자가 되셨단다.

2. 자연농법과 유기농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자연농법이란 땅을 갈지 않으며, 퇴비 하지 않고, 팔지 않고 나누는 것이다. 유기농도 농약은 않지만 밑천이 필요 하게 되어 돈 벌이로 전락 하게 된다. 자연농법은 밑천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며 밀, 보리, 벼 중심으로 모든 농사를 짓고 팔지도 않는다. 씨앗은 받아서 이용 하고 물을 대거나 할 때는 흙을 긁어 주어 둑을 다져 두는 방법을 이용 한다. 자연 상태에서 발아를 시키고 뿌리며 주위의 잡초를 이용 하여 농사를 짓는다.

벌레가 생긴다는 것은 거름기가 많다는 것이며 무엇도 첨가 하지 않을 때 벌레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잡초는 뿌리가 깊게는 1m 20cm이상 까지도 내린다.

3. 현대인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생활 해 오시는지요, 자녀분들은 어떻게 성장 하셨나요?

돈이 무엇인가? 허깨비다. 꾸민 것이다. 마음 속에 올 바르냐, 올 곧으냐를 알아 차려야 한다. 배추는 돈 벌이 이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데서 벗어날 수 없다. 돈과 음식을 교환 하는 것은 잘못이다. 조건이 있는 것 이므로 조건이 없는 나눔의 사상, 즉 생명사상·생명 존중의 사상으로 살아야 한다. 밥을 사고 팔면 안 된다. 밥은 생명인데 무지는 참을 맞이 하지 않 듯 홀로 가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에는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지만 아이 어머니와 교육 문제와 타협 하게 되고, 숯가루를 만들어 목사님께 보급 하고 그 대신으로 학비를 보충 하여 어렵게 학교를 졸업 시켰다. 그 이외의 생활은 현재처럼 농사 짓고 나누는 삶으로 꾸려 가고 있다. 생활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지금은 농사 지을 땅도 있고, 뜻을 따르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도 있다고 한다.

4. 니시의학과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유기농 교육을 받을 때 정진영 선생(현 유기농 연합회장)께서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 즉시 아침 밥을 먹지 않았고, 그 당시 기준성 선생님께 니시건강법 관련 책자와 부항 등을 소개 받게 되었다. 그 가운데 아침 먹지 않기, 모관운동, 글로뮈에 대한 내용, 각탕 등 자연건강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5. 자연치유가로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떤 분들에게 어떤 치유법을 제시 하고 있으신지요?

질병을 숨통과 연결 하고, 굶고, 단식 하고, 스스로 사실로서 해결 하면 병은 낫는다. 자연농을 실천 하면서 자연건강법을 통해 수 십가지 앓이(질병)에 시달리던 내가 건강하게 되었다.

결혼 후 자식이 6~7살 때 뇌염이 걸렸지. 아이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으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우격다짐으로 병원에 입원 시켰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해열제를 주고 처치를 하지만 열이 내려 가지 않고 호전 되지 않았다.

의사한테 “당신 고칠 수 있느냐?”

의사 왈 “못 고친다.”

“왜 환자를 받느냐?”

“생명이 귀하니까 혹시나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어떻게 혹시나로 생명을 보느냐, 바르게 보아야지” 하니

“당신이 참 의사요” 하더란다.

내가 방법이 있다. 그러니 내 안 사람한테 당신 남편만 믿어라 한 말씀만 해 주라 하여 일주일 째 병원에 있던 아이를 집으로 데려 왔다고 한다. 4 시간마다 1번씩 총 3회의 각탕을 하여 생사의 기로에 있던 아이가 뇌염을 나았다고 한다. 지금부터 20여년 전의 일 이니...

작년에는 하루 1식을 하시며 16시간 이상 일을 놀이 삼아 하시는 사모님께서 지독한 근육통과 독감이 왔다고 한다. 장기 단식, 각탕을 번갈아 하는데도 쉽사리 낫지 않아 여러 요법을 통해 낳았는데 제3군 전염병 렙토스피라증 이었다 한다.(이 부분은 자연겅강회 측에서 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못 옮긴 것 같다. 10일 넘는 단식에도 낫지 않아 확인 해 보니 유행성출혈열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탕을 통해 해결 했다고 한 선생님이 말씀 하셨었다.)

요 근래는 시집간 딸이 있는데 병원 의사가 두 번 놀랐다고 한다. 임산부의 몸 무게가 전혀 늘어 나지 않는 것과 32세의 초산인데 무통분만으로 손 쉽게 자연분만을 하는 것을 특이한 일 이라 하였다. 임신 전 선생님의 뜻에 따라 단식과 순환단식을 반복 하고 소식을 한 덕택으로 아이는 현재 6개월 인데도 골격도 튼튼 하고 아주 건강 하다고 한다.

6. 선생님께서는 환자 분 들에게 순환단식을 권장 하신다는데 방법 좀 말씀 해 주시지요.

순환단식은 모든 환자에게 좋다. 하루 굶고 6일 밥 먹고, 하루 굶고 5일 밥 먹고...하루 굶고 하루 밥 먹고,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 하루 굶고 6일 밥 먹고...순환단식은 생활단식이다.

굶기 전 날은 식사량을 약간 줄이고 굶고 나서 첫 식사도 역시 소식을 한다. 밥을 모셔야 한다. 아픈 사람은 200번 씹고, 건강한 사람은 150번 씹어 먹는다. 허겁지겁 먹는 것을 고치고 소식을 하면 충분히 흡수 하도록 돕는다.

3년 전 78세이신 서울에서 사시던 장모님께서 관절염 등으로 움직이지를 못 하셔서 모시게 되셨단다. 다리를 못 쓰게 되셨으니 사시면 되겠느냐? 잡숴야 되겠느냐? 안 먹어야 된다, 하시면서 순환단식을 권장 하셨다.

3개월동안 순환단식을 하고 보름 있다가 스스로 6일 단식, 그 해 겨울엔 한 달간 과일식을 하셨단다. 지금은 3천평이 넘는 밭을 혼자 다 매실 정도로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일 자체가 놀이가 되었다 한다. 조식폐지와 점심은 잡곡 반숙, 저녁은 과일 위주의 식생활을 하시면서도 한 여름에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 하는 건강한 체질이 되셨다 한다.

7. 선생님의 식사 방법 좀 소개 해 주시지요?

여러 가지 곡물로 밥을 하는데(잡곡 40~50%, 현미 50~60%), 콩과 쌀은 따로 일어 건지고 잡곡은 통밀, 팥, 통보리, 율무 등 딱딱한 것은 3시간 동안 담가 놓는다. 밥 앉힐 때 물이 쌀을 잠길 정도로 하고, 압력솥 추가 달랑 거리면 1분 30초 후 불을 끄고, 다시 1분 30초 지난 다음에 김을 빼고 휘 저어서 뜸이 안 들게 하는 것이 좋다.

뜸을 안 들이게 하는 반숙은 생식 보다 오히려 몸에 친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반찬은 여러 가지로 준비 하며, 과일과 채소 뿐만 아니라 생선과 멸치, 김, 미역 등 해초류도 포함 하고 있다.

식사 시간은 밥 먹고 수저를 놓고 충분히 씹은 다음 반찬을 먹는 식으로 하며, 보통 식사 시간은 40분에서 한 시간 가량 먹게 된다.

8. 인생을 잘 산다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바르게 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온 것은 온전히 갖춰진 곳에 온 것이다. 완성 되지 못한 곳에 있으면(완선된 곳에 와서) 완성 되게 쓰고 가야 한다(온전히 누리고 가야 한다).

내 삶이 모두의 삶이 되었을 때 바른 것이다. 모두의 삶이란 풀도 살고, 곤충도 살고, 사람도 살고, 모두가 사는 삶인 것이다.

9. 마지막으로 자연건강 회원들에게 당부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구의 녹색 별에 왔다. 모두가 잘 사는 삶으로 통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노동 하지 않고 하루 세 끼 먹으면 안 된다. 조식폐지 하고 통 곡식에 잡곡밥으로 하루 두 끼에 자연과 더불어 소풍놀이 하듯 충분한 노동이 필요 하다.

요즘 신종풀루는 내 몸에 들어 온 것을 내 보내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다. 밥 모심을 잘 하면 어떤 앓이가 오셔도 내 몸에서 맞아 승화 하여 잘 살게끔 만들어 준다. 생명을 펼쳐 주는 고마움으로.

아프다는 것 자체는 내 보내느라 아프다. 모관운동, 풍욕, 각탕, 조식폐지 등등으로 내 보내라. 버리면 삶이 여유로워지고 인생이 바뀐다.

그리고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일도 모시고, 땅도 모시고, 똥도 모시고, 잠도 모시고, 상대방을 모시고, 삶도 모셔야 한다.
<자연건강회보 2009년 10·11월 호>

하루 2끼 식사에 반숙 현미잡곡밥 150번 씹는 한원식 농부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에 만난 한원식 농부. 골짜기를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곳에 자연농법으로 쌀과 채소를 기르며 살아가는 한원식 선생을 만났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한 해 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자연의 밥상으로 몸을 돌보라는 그의 말씀을 듣고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안하고 이곳을 찾아온다.

1998년에 이곳에 들어와 지금까지 땅을 일구며 살고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 하지만 70Wh 태양광 발전으로 라디오도 듣고 전등도 켠다.



통밀  땅콩  흑미  현미  옥수수  수수  율무 서리태…

한원식 농부의 밥은 현미 상태의 모든 곡류를 넣어 짓는다.

반숙 - 압력 밥솥 꼭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뚜껑을 연다. 
반숙은 변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발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선생이 가장 권하는 방식이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150번을 씹어라!"

밥을 빨리 먹으면 중화가 되지 않아 몸이 상하기 쉽고,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더 많이 먹게 된다는 것.
한 수저 밥을 입에 넣으면 숟가락을 상에 놓고 열심히 150번을 씹는다.

입 안에 들어간 밥알이 알알이 씹힌다. 20번을 씹으니 턱이 얼얼! 어떻게 150번을 ~

신기한 것은 씹을수록 밥의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밥이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한원식 농부의 밥상은 소박하며 푸짐하다.

 

손님을 맞이하느라 차린 푸짐한 밥상.정작 주인들은 하루 한 끼나 두 끼를 드신다.

손님 밥상을 차리느라 아침부터 불을 때며 반찬 장만을 한 농부의 부인은
점심 한 끼만 드신다. 오래된 습관이라 힘든 일을 해도 거뜬하다고 한다.

한원식 선생은 점심 저녁 두 끼만 드신다.

아침식사는 독이라고 여긴다.

아침은 음의 기운이 강한 시간이라 내보내는 때.

양의 극치인 오후부터 몸이 받아들이는 때.

하루 14~15시간 일을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은 천상 농삿군이라고 한다.

"아침 한 끼 밥을 안 해도 활용할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도시의 가정 주부들이 가장 공감하는 말씀이었다.

한원식 농부를 만나고 돌아온 몇몇 착실한 학생들은
그날 이후 집안의 백미를 모두 먹어 치우고 현미 잡곡밥으로
하루 두 끼 150번 씹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시래기는 겨울철 영양의 보고(寶庫)

[CBS편성국 변춘애 웰빙다이어리담당 피디]

간암 억제에도 탁월한 효과가!


무청을 말린 시래기는 칼슘과 나트륨, 철분 등 미네랄이 풍부해서 겨울철 무기질을 보충하던 식품이다.) 건강식탁에서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영숙씨가 시래기의 다양한 활용 방법을 소개한다. 섬유질이 많이 들어있고 비타민 A, B1, B2, C도 풍부한 시래기는 햇빛에 말리면 엽록소가 많이 파괴되어 누렇게 변하게 된다. 통풍이 잘 되고 그늘진 곳에서 말린 것이 좋다.

한국식품연구원 김영진박사팀은 무청에는 간암억제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간암이 발생되는 실험쥐에 무청을 먹이고 사육한 결과 무청을 섭취한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간암 발생율이 현저히 적었다. 무청에 식이섬유는 전체 35%이상을 차지...식이섬유는 포도당의 흡수율과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저지해 당뇨와 동맥경화예방에 필수 시래기 삶은 것100g당 칼슘이 335mg이상 들어있어 성인 하루 칼슘섭취권장량(700mg)의 반 정도를 차지...철분도 14.5.mg이 들어있어 성인여성의 하루필요권장량 14mg보다 많다.

★ 다음은 푸드 스타일리스 김영숙씨가 조언하는 시래기를 맛있게 조리 하는 방법시래기는 하룻밤 정도 찬물에 불려 쌀뜨물에 삶으면 군내도 없고 부드럽다.된장이 단백질을 보충해주고 시래기가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해주어 좋은 궁합...산성식품과도 좋은 궁합...1. 먼저 시래기를 찬물에 1~2시간 정도 푹 담가 놓는다.2. 물에 불린 시래기를 센불로 약 2~3시간 정도 삶은 후 불을 끈다.3. 불을 끄고 찬 물에 담가 1시간 정도 둔다.

★시래기볶음삶은 시래기 100g, 들기름 3큰술, 들깨가루 2큰술, 국간장, 다진파, 다진마늘, 국간장, 다진마늘, 다진파를 시래기에 넣고 조물조물 무쳐 밑간해둔다.들기름을 두르고 시래기를 넣고 볶다가 들깨가루를 넣어 볶는다.

★시래기밥시래기만 넣고 밥을 지어도 좋고 무나 고구마 등을 함께 넣어 해도 좋다. 시래기에 들기름, 국간장등을 넣어 밑간한 다음 넣어 밥을 짓는다.된장양념장간장양념장 간장 고춧가루 올리고당 깨소금 참기름 달래

★시래기 고등어조림 고등어 1마리, 시래기 물기 짠 것 200g, 마늘 다진 것 2큰술, 파 다진 것 2큰술, 생강 다진 것 1/2큰술, 후춧가루 약간, 청주 1큰술, 참기름 1큰술, 물이나 다시마국물 3컵, 대파 1대 1. 고등어는 머리를 잘라내고 내장을 빼낸 다음 토막을 내서 씻어 물기를 걷는다. 2. 시래기는 씻어서 물기를 짜고 반 자른다. 2. 시래기에 양념을 해서 냄비 바닥에 반을 깔고 고등어를 얹은 뒤, 그 위에 남은 시래기 양념한 것을 덮는다. 물을 부어서 끓이다가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서 넣고 국물이 약간 남을 정도로 끓인다.

★시래기 매운 갈비찜 찜갈비 800g(대파잎 1대분, 양파 1/2개, 통후추 1작은술,), 시래기 물기 꼭 짠 것 500g, 양념장(진간장 6큰술, 설탕 3큰술, 마늘 다진 것 3큰술, 파 다진 것 3큰술, 후춧가루 약간, 참기름 2큰술, 매운 고춧가루 4큰술) 1. 찜갈비는 고기 쪽에 칼집을 넣어서 찬물에 담가 30분 정도 핏물을 뺀 다음 냄비에 넣고 한 번 삶아 건져서 다시 말끔히 씻는다. 2. 냄비에 찜갈비와 대파, 양파, 통후추, 수삼뿌리를 넣고 물을 10컵 부어 삶는다. 3. 40분 정도 삶아서 갈비는 건지고 국물은 젖은 면 보자기에 밭친다. 4. 시래기를 양념해서 바닥에 반 깔고 갈비를 얹은 다음 다시 시래기 남은 것을 덮고 육수를 부어서 40분 정도 푹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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