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 스님과 삼선암 시래기죽

2016.02.25 11:08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경기도 화성 신흥사는 어린이포교 제일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사찰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어린이법당’이 있는데 귀여운 모습의 관세음보살과 앙증맞은 선재·문수 동자를 모셨다. 단청도 밝고 따뜻한 색을 기본으로 해 벽화와 주련을 예쁘게 장식했다. 어린이포교 제일도량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찰의 모든 것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화학조미료·오신채 안 쓰고
천일염 볶아서 독소 제거

풋고추열무김치 대표음식
무왁자지로 한겨울 견뎌내

콩가루 넣은 시래기죽 별미
가난한 시절 건강지킨 보약

어린이포교에 사찰음식 적용
아토피·천식 치료효과 탁월


오늘날의 신흥사는 주지 성일 스님의 원력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스님은 1975년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어린이 포교의 한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스님의 원력으로 불자로 거듭난 어린이들이 수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청소년, 성인으로 불연(佛緣)이 이어져 한국불교의 동량을 길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성일 스님은 1963년 12월 해인사 삼선암으로 출가했다. 은사 장윤 스님은 삼선암 내에서 음식 잘하기로 유명했다. 성일 스님의 상좌인 선재 스님이 출가 후 장윤 스님 밑에서 몇 년간 음식을 배워 사찰음식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것만 봐도 장윤 스님의 솜씨는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음식 잘하는 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해서 배고픔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배고픔의 시련은 출가 첫날부터 시작됐다. 출가를 결심하고 삼선암에 올라 스님들 처소 앞에 섰다. 삼선암에는 60여명의 스님이 상주하고 있었으나 누구하나 처소 앞 새로운 얼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조용히 방문이 열리더니 스님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찌그러진 노란 양은그릇 하나를 내놓았다. 그 안에는 멀건 시래기죽과 숟가락 하나가 덜렁 들어가 있었다.

“먼 길 왔으니 일단 요기나 하라며 주는 간식으로 생각하고 후루룩 마셨어요. 그리고 다시 방안에서 가만히 기다리는데 다음날 새벽까지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겁니다. 정말 쌀이라곤 찾으려야 찾을 수 없던 멀건 죽이 삼선암 저녁공양이었던 거예요. 배를 곯고 보낸 다음날 새벽 공양간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스님들이 시키는 잔심부름을 하며 공양 준비를 돕는 것으로 행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삼선암은 스님들이 모두 모여 발우공양을 했다. 아침은 주로 무밥을 먹었고 저녁은 멀건 시래기죽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점심때는 그나마 마지로 올린 밥을 조금 먹을 수 있었다.

성일 스님이 은사스님에게 배운 사찰요리 비법은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듯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윤 스님은 화학조미료·오신채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고 소금도 천일염을 구해 절구에 찧어 볶아서 독성을 제거한 뒤 사용했다. 간장도 그냥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조선간장에 서리태와 표고버섯, 다시마, 조청 등을 넣어 폭 끓여 맛간장을 만들어 놓고 썼다. 덕분에 스님의 음식은 언제나 맛도 좋으면서 몸에도 좋았다.

은사 장윤 스님에게 배운 대표적인 사찰음식으로는 ‘풋고추열무김치’가 있다. 성일 스님이 채공이 되자 장윤 스님은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먼저 무를 깨끗이 씻어 항아리에 깐 다음 그 위에 길게 썬 풋고추를 켜켜이 얹는다. 그 다음에 다시 열무를 얹고 또 그 위에 풋고추를 얹고, 그렇게 김치 한 독을 다 채운 후 보리쌀 삶은 물을 소금으로 간해 항아리에 자박해지도록 붓는다. 그 풋고추열무김치가 익으면 얼마나 구수하고 맛있는지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무왁자지’ 역시 겨울철 삼선암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조선무를 큼지막하게 잘라서 기름에 볶다가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물과 함께 자박하게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인 무왁자지가 된다. 여기서 비법은 마치 곰을 하듯 두어 시간 이상 느긋하게 졸여야 맛있고 그 맛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저녁공양으로 먹었던 시래기죽 역시 별미였다. 삼선암에선 시래기에 꼭 생콩가루를 묻혀 죽을 끓였다. 먼저 물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생콩가루를 묻힌 시래기를 넣어 끓이면 맛도 좋을 뿐 아니라 영양적인 면에서도 훌륭했다. 배고프고 양질의 음식이 부족했던 시절 시래기와 콩가루는 스님들의 건강을 지켜주던 보약이었던 셈이다.

스님은 2년여의 행자생활 뒤 고산 스님 밑에서 강원 과정을 마쳤다. 고산 스님을 비롯한 어른스님들은 성일 스님이 강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스님은 공부를 마치자 곧장 포교현장에 뛰어들었다. 어린이 포교 등 불교의 사회전법활동이 전무했던 시절, 불교의 미래는 어린이들에게 있음을 절감했고 여름불교학교를 시작으로 어린이법회, 청소년수련관 건립 등 어린이 포교 불사에 팔을 걷어붙였다.

성일 스님이 어린이 포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성일 스님은 은사스님에게 배운 조리법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한다. 간식도 천연재료를 주로 쓴다. 사과나 오렌지 등 과일을 말려 과자로 대용하거나, 콩이나 두부 등을 이용해 튀김이나 전을 만들어 단백질을 보충하게 한다.

“은사스님에게 배운 맛있고 좋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였더니 짧은 기간에도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아토피가 있던 아이들의 가려움이 멈추거나 천식 있던 아이들의 기침이 호전되는 겁니다. 천연조미료가 아이들의 병을 거짓말처럼 다스리는 거예요.”

스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건강하고 맛있는 사찰음식이 개발되기를 바라고 있다.어린이들이 부처님 법을 통해 정직하고 심성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불교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서원한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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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 스님은

1963년 해인사 삼선암에서 장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5년 경기도 화성시 신흥사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시작으로 청소년수련원을 건립하는 등 어린이·청소년 포교활성화에 앞장, 2012년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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