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 스님과 함께 두부 찾아 떠난 여행길_월간불광

2016.02.12 10:17

<우관 스님과 함께 두부 찾아 떠난 여행길_월간불광>

인간의 일이 매사 두부 같으면 얼마나 좋으리. 두부 한 판이 시간이 흘러 막 굳었다. 그 시간을 재촉하면 두부는 망친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아무 양념도 없이 다 굳은 두부를 한 입 먹어본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의 말씀이 이 두부처럼 천천히 육신으로 스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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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셰프님의 맛깔나는 글로 함께 떠나는 월간불광의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2015년 1월호 글입니다.

오관게(五觀偈)를 살펴보면, 사찰음식의 정의가 집약된 경전 문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를 생각하는 연기적 사고와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하심(下心), 맛을 탐닉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약으로 삼는다는 자세, 수행자로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는 원력이 담겨 있습니다.(도움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김유신 총괄부장)

두부 한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며 다시금 오관게를 되뇌어 봅니다.

**우관스님의 발우공양체험과 연잎밥 만들기는 한국사찰음식 문화체험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www.bulkwang.co.kr/main/sub_view.php?bo_table=new_2_12&wr_id=18975&sca=%C0%CC+%C0%BD%BD%C4%C0%CC+%BE%EE%B5%F0%BF%A1%BC%AD+%BF%D4%B4%C2%B0%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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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까지 한달음이다. 우관 스님의 절 이천 감은사에서 강릉 땅이 멀지 않다. 차창 밖으로 순두부 같은 눈이 나린다. 그래도 차는 씽씽 달려 금세 초당마을이다. 빈속이라 얼른 한 그릇, 두부를 뜨고 싶다. 먹는 일을 절에서 공양이라 이르는 것은 어찌나 적확한지 모르겠다. 베풀어 기르다. 과문하나, 불교의 정신은 모두 이 말로 수렴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부터 내달려온 허한 속에 뜨끈한 두부가 들어온다. 밥이 부처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한다. 

| 초당마을이 강릉의 명물이 된 사연
두부는 절집에서 즐겨 쓰는 재료다. 부처님 재에 두부가 빠지지 않았다. 맛있고 푸짐하며, 심지어 짓는 일조차 경건하고 순결한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조에 조포사가 있었다. 포泡는 두부를 이름이니, 두부 만드는 사찰이다. 그 속사정은 자못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우관 스님이 말한다. 왕가의 재를 절에서 모시면서 두부 지어다 바치는 일을 절에 종용했으리라는 것이다. 저간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절밥에 두부는 고마운 재료다. 『우관 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음식』이라는 책을 펴보니, 두부가 주가 되는 음식이 여섯 가지나 실려 있다. 두부구이조림에, 두부와 방아잎 장떡에다가 두부장아찌도 있다. 

‘토박이할머니순두부’의 김규태 사장 가족이 맞아준다. 조림에 전골에 두부요리로 한상 차렸다. 스님이 “두부답다.”고 말씀하신다. 부드럽고 고소하며 진한 두부의 결이 잘 살아 있다. 찬은 또 어찌나 정갈하고 수수한지 모르겠다. 스님이 마음에 들어 하니 다들 더 기껍다. 마침 두부를 한 말 만든다고 한다. 돕기로 한다. 

초당마을에는 소나무숲이 좋다. 적당히 앵글만 대면 다 그림 같은 솔숲이다. 나무가 실하고, 적당히 굽이치며 쭉쭉 뻗었다. 오래된 나무라는 걸 알겠다. 이 마을이 강릉의 명물이 된 건 두부 때문이다. 동란 이후에 과부가 된 아녀자들이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서 두부마을의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었는데,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몽양 여운형이 해방 후에 저 강릉고 자리 옆에 초당의숙이라고 야학을 했더래요. 영어를 마이 가르쳤답니다. 그런데 몽양이 누굽니까. 사회주의자라고 뻘개이 대접을 받았더래요. 그래, 그 제자들도 전쟁 와중에 탄압을 마이 당했지요.”

투박하고 정겨운 강릉사투리로 김 사장이 설명한다. 그의 말을 더 잇자면, 그리하여 이 마을의 다수 여인들이 홀로 되었다. 집단 학살을 당하는 바람에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먹고살자고 다들 두부를 맨들어 시내 나가 팔게 된 거지요.”

초당두부마을은 지금은 두부요리를 파는 동네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그처럼 두부를 만들어 강릉으로 가져다 팔았다고 한다. 김 사장 학생시절만 해도, 아침에 두부 함지를 인 아낙들과 함께 통학버스를 탔다. 물론 그의 모친도 두부 파는 아낙이었다. 지금처럼 두부 식당이 즐비해진 건 8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자가용족이 생기고, 놀러 다니는 사람이 늘면서 하나둘 두부 식당이 생겨났다. 대부분 두부를 만들던 집에서 불을 피우고 상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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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고 순정한 콩물이 바닷물과 만나니
초당마을의 두부 역사는 16세기 사람 허엽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허엽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다. 그가 두부 만드는 것을 독려해서 지금의 초당마을이 되었다고 말한다. 허엽 부자父子는 공교롭게도 음식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허균이 조선조에 미식을 다룬 드문 책인 『도문대작』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단한 미식가였다. 임지를 따지는 기준을 미식 여부로 가렸다는 얘기도 있다. 도문대작이란 말 자체가 푸줏간 앞을 지나며 입맛을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음식에 초연함을 덕으로 알았던 사대부로서는 아주 드문 경우다. 그런 부자가 살았던 초당 마을에 두부 요리가 번성하여 많은 현대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참 공교롭기만 하다. 

스님과 함께 두부를 만들어본다. 김 사장이 앞서 소매를 걷어붙인다. 두부 공정을 스님도 다 꿰고 있어서 척척 죽이 맞는다. 김 사장의 설명이다. 

“콩을 잘 불구고(불리고) 갈아야 맛있는 두부가 돼요.”

먼저 콩을 불린다. 여름에는 반나절이고 겨울은 그 두 배다. 그리고는 곱게 갈아서 면보 받쳐서 콩물을 얻는다. 하얗고 순정한 콩물이 뚝뚝 듣는다. 

“참 순수한 음식이고, 그래서 소중한 맛이 아닌가 해요.”

스님의 말씀이다. 여러 번 뜨거운 물을 부어내린다. 남은 것이 비지다. 콩물에 순수한 영양을 다 내주어서 비지는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신 풍부한 섬유질이 있고, 구수한 맛이 남아 있다. 이 비지는 누구든 한 봉지씩 가져갈 수 있다. 콩은 비지가 되어서도 최후까지 버려지지 않고 중생에게 공양한다. 

얻은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가열한다. 이때 간수를 넣는데, 초당마을에서는 정수한 바닷물로 대신한다. 간수란 소금자루 밑에 고이는 쓴 용액이다. 마그네슘이 주성분이다. 알려진 바로는 허엽이 쓴 간수 대신 바닷물을 써서 두부를 만들라 해서 오늘날의 초당두부가 생겼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든 바닷물 두부는 드문 경우다. 이곳 두부가 쓰지 않고 맛있는 이유라고들 한다. 가마솥에 열이 오르니 얇은 막이 생겨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최고급 음식으로 치는 ‘유바’다. 치즈처럼 쫄깃하고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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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이 매사 두부 같으면
유바 밑으로 두부가 ‘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어느 순간에 두부는 엉기어 탄생한다. 순두부의 시작이다. 

“우리는 원래 순두부라고 안하고 초두부라고 했어요.”

처음 초初. 그래서 이 집에서는 전통 이름대로 초두부라는 메뉴를 복원했다. 초두부 한 그릇을 먹어본다. 순정한 콩의 향과 짭짤한 국물의 맛이 깊게 들어간다. 

“요새는 맛이 다 달려들기만 하지 이처럼 순하고 솔직한 느낌을 내지 않지요. 그래서 이 두부가 더 각별합니다.”

스님이 두부를 저으며 한 마디 보탠다. 급하게 저으면 좋은 두부를 만들 수 없다. 

“두부는 원래 게으른 며느리가 잘 만든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천천히 해야 좋은 두부가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순두부가 다 엉긴다. 마치 두부 꽃 같다. 두부를 보던 김 사장이 오랜 경험으로 불을 끈다. 두부는 응고식품이므로 온도를 잘 봐야 한다. 너무 오래 가열하면 망친다. 순두부를 떠내어 나무틀에 붓는다. 모두부를 만들 시간이다. 우리 콩 한 말로 겨우 스무 모의 두부가 나온다. 말이 한 모지, 나중에 썰어보니 엄청 크다. 8백 그램씩 자른다고 한다. 벽돌보다 크다. 어린애 손바닥만 한 두부는 쩨쩨해 보인다. 

“사찰음식을 하다가 오히려 건강이 나빠졌어요. 여기저기 행사도 많고, 강의에 불려다니다가 생긴 일이지요.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어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우리 모두 두부처럼 순하고 묵직하게 다시 정진할 일을 결심하게 된다. 두부는 인간의 지혜와 손으로 만들지만, 오히려 맛을 내려는 개입이 최소화된 음식재료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수행하는 일과 닮았다. 순백하고 정직하여서 비로소 밝은 길로 가는 것.

“두부는 밀도의 요리지요. 엉기는 것도 밀도이고 입에 꽉 차서 부드럽게 풀리는 맛도 밀도이고. 담백하다는 말도 두부에서 딱 들어맞습니다.”

인간의 일이 매사 두부 같으면 얼마나 좋으리. 두부 한 판이 시간이 흘러 막 굳었다. 그 시간을 재촉하면 두부는 망친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아무 양념도 없이 다 굳은 두부를 한 입 먹어본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의 말씀이 이 두부처럼 천천히 육신으로 스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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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 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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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먹어도 맛있는 두부장아찌
재료
두부 3모, 고운소금 1t, 포도씨유 3T, 집간장 1/2컵, 조청 3T, 물 1컵, 생강 20g, 건고추 2개, 다시마 2장(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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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1. 두부를 1.5cm 두께로 썰어 소금을 뿌린다. 



2. 포도씨유를 두른 팬에 올려 중간불에서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3. 생강은 얇게 저미고 집간장, 조청, 물, 건고추, 다시마와 함께 팔팔 끓인다. 건지를 걸러낸 간장물을 식혀둔다.



4. 두부를 통에 담아 간장물을 붓는다. 3~4일 후 간장물만 따라내고 끓인 다음 식혀서 다시 두부에 부어둔다. 바로 먹어도 좋으며, 길게는 세 달 정도 저장해 두고 먹을 수 있다.



Tip_
보통 시중에서 판매하는 두부에는 응고제로 간수를 쓴다. 두부요리를 할 때에는 두부를 엷은 소금물에 담갔다 쓰거나 엷은 소금물을 끓여 살짝 데친 다음 쓰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삼투압 효과에 의해 간수가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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