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 먹거리 기본권 (13) -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통제받지 않는 권력

오늘은~ 2014.03.07 21:57

장경호 /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페이스북에서 옮겨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통제받지 않는 권력

 

곡물메이저는 전통적으로는 곡물의 저장-보관-운송-무역을 장악함으로써 식량과 먹거리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산물의 자유무역으로 지구촌의 식량과 먹거리가 단일한 시장으로 통합되는 추세가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농업․식량․먹거리의 생산에 필요한 종자, 비료, 농약에서부터 유통, 무역 및 식품가공 등 식료품의 소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점차 단일한 푸드시스템으로 통합되는 경향도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생산 및 소비에 이르는 각 분야 및 영역에서 이미 독점적 지배력을 형성하고 있던 초국적 자본들을 단일한 네트워크로 묶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초국적 자본들의 이러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성립된 푸드시스템을 우리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미 자신들의 주력 분야 및 영역에서 독점적 지배력을 갖고 있던 초국적 자본은 다른 분야 및 영역의 초국적 자본들과 전략적 제휴나 조인트벤처 등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였고, 이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이 지구촌 인류의 식탁을 지배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카길을 비롯한 곡물메이저도 글로벌푸드시스템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세계 1위의 유전자조작(GMO) 종자업체인 몬산토(Monsanto)나 노바티스(Novartis) 등과 같은 종자회사, 듀퐁(DuPont), 다우(Dow) 등과 같은 비료 및 농약 회사, 존 디어(John Deere)를 비롯한 농기계회사, 퓨리나(Purina)와 같은 사료회사,바이엘(Bayer)을 비롯한 축산약품회사 등 농업생산에 필요한 후방산업 분야의 초국적 자본들도 글로벌푸드시스템을 움직이는 멤버들이다. 또한 콘아그라(ConAgra), 타이슨(Tyson), 네슬레(Nestle) 등과 같은 식품가공회사에서 코카콜라(Coca-cola), 맥도널드(Mcdonald), KFC 등과 같은 음료 및 패스트푸드 회사들도 글로벌푸드시스템의 주축들이며, 식료품의 소매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월마트(Walmart), 코스트코(Costco) 등도 글로벌푸드시스템의 주요 구성원들이다.

 

곡물메이저를 비롯하여 글로벌푸드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 초국적 자본을 묶어서 우리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food complex)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 무기판매업자와 군부 그리고 군수자본을 통틀어 군산복합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전쟁과 무기를 통해서 군산복합체가 이윤과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이면에는 지구촌 인류가 참혹한 죽음의 공포를 겪어 왔듯이 식량과 먹거리를 통해서 농식품복합체가 이윤과 권력을 누리는 뒤편에는 빈곤과 기아의 고통에 신음하는 지구촌 민중의 피눈물이 있다.

 

푸드 퍼스트(food first) 운동으로 잘 알려진 라즈 파텔 박사에 의하면 지구촌에서 기아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Haiti)의 비극의 배후에는 초국적 자본이 있다. 아이티는 1980년대 초반까지 쌀 자급률이 100%에 이르는 나라였으나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자본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을 내세워 농업을 비롯한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하였고, 이 때문에 쌀농업이 몰락하였고 미국으로부터의 쌀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민중들과 몰락한 농민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 빈곤과 기아에 빠지게 되었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식량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가 아니라 미국이 수출하는 사료용 옥수수나 대두박 등으로 끼니를 채우는 형편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티는 지난 2010년 대지진 참사를 겪었는데 당시 미국은 식량생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GMO 종자를 대량으로 제공하여 아이티 전체를 GMO 생산기지로 만들려는 시도를 해 국제사회의 지탄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아시아에 있는 필리핀은 세계적인 쌀 생산국인 동시에 쌀 수출국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쌀 생산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의 산하 연구기관 가운데 하나인 ‘국제 쌀 연구소’가 필리핀에 설치될 정도였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침투로 아이티와 마찬가지로 쌀농업이 붕괴하면서 쌀 수입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가격폭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가 되었다. 아이티와 필리핀은 모두 지난 2008년 세계적인 가격폭등 당시 식량을 요구하는 민중들이 경찰 및 군대와 충돌하여 대규모 유혈사태를 겪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카길, 몬산토 등 초국적 자본의 농업지배를 감시하는 활동을 벌이는 캐나다의 국제 환경․인권단체인 ETC그룹은 지난 2008년 11월 ‘누가 자연을 소유하는가’(Who Owns Nature?)라는 보고서를 통해 “초국적 자본은 사회, 경제, 무역 체제를 만드는 압도적 국제 권력이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의 활동을  감시할 국제기구는 없다”고 경고했다.


이들 초국적 자본은 국제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배력을 갖고 실체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WTO/FTA),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IMF/IBRD) 등을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두고 개별 국가의 농업․식량․먹거리 정책을 제어한다. 사실상 개별 국가들은 적어도 농업․식량․먹거리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정책결정권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을 전 지구적으로 확장시키고, 초국적 자본의 이윤과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초국적 자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의 영향권내에 있는 국제기구와 규범을 내세워 국가를 제어하지만 종종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개별 국가를 공격하여 굴복시키기도 한다. 그 전모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단편적으로나마 국내에 알려진 몇 가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1980년 한국이 대흉작으로 쌀이 크게 부족하여 긴급하게 쌀을 수입하려고 하자 미국 곡물 수출업체들은 국제 시세의 세 배 가격으로 수출하는 횡포를 부렸고 당시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은 이들의 가격폭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도 1991년 흉작으로 쌀이 부족했는데, 당초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쌀을 수입하려고 했으나 미국 곡물업체들이 미국 정부를 앞세워 일본 정부를 압박하였고, 결국 일본은 국제 시세의 두 배 가격으로 미국 쌀을 수입했다. 1988년에 나이지리아 정부가 국내 수급을 이유로 미국산 밀 수입을 중단하자 카길은 미국 정부를 움직여 나이지리아의 대미 섬유 수출에 제재를 가하였고, 결국 미국의 경제제재에 나이지리아 정부는 수입금지 조치를 풀어야 했다.

 

ETC그룹의 경고대로 초국적 자본은 국제 시장을 지배하는 압도적 권력이다. 그러나 그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민중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권력이다. 그래서 지구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리고 지속가능한 농업․식량․먹거리를 위해서는 초국적 자본의 권력을 제어하고 통제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히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