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 먹거리 기본권 (12) - 식량의 지배자, 곡물 메이저

오늘은~ 2014.03.07 21:56

장경호 /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페이스북에서 옮겨옴.

식량의 지배자, 곡물 메이저

 

이미 우리의 밥상은 글로벌푸드시스템에 지배당하고 있다. 글로벌푸드시스템이 직접 공급하는 먹거리, 비록 국내에서 생산․공급되지만 글로벌푸드시스템에 종속되어 있거나 그것과 유사한 푸드시스템이 제공하는 먹거리로 우리의 밥상이 대부분 채워지고 있다.


글로벌푸드시스템을 지배하면서 지구촌 인류의 먹거리를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거대한 초국적 자본을 우리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food complex)라고 부른다. 그리고 곡물메이저(major grain companies)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주축을 이루면서 글로벌푸드시스템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종자에서 식탁까지. 이것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모토이다. 말 그대로 종자에서부터 먹거리의 생산-유통-가공-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종자를 비롯하여 농기계, 비료, 농약 등 주요 영농자재 산업이 농식품복합체의 주도하에 있다. 농산물의 생산을 비롯하여, 특히 저장, 보관, 운송 등과 같은 유통 및 무역도 농식품복합체가 장악한지 오래이다. 게다가 식료품 가공 및 프랜차이즈 역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곡물메이저는 주로 곡물의 저장-보관-운송-무역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곡물의 저장, 운송 및 무역을 취급하는 곡물기업 가운데 독점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석유시장을 주무르는 석유메이저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국제 곡물시장을 취락펴락하기 때문에 곡물마피아로도 불린다.

브루스터 닌의 저서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2008, 시대의창)에 의하면 1990년대까지는 미국계 기업인 카길(Cargil),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콘아그라(ConAgra), 콘티넨탈 그레인(Continental Grain)과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LDC), 아르헨티나의 벙기(Bunge), 스위스의 앙드레(Andre) 등이 7대 곡물메이저로 꼽혔다. 그러나 콘티넨탈 그레인은 1998년에 곡물사업 부문을 카길에 매각하고 식품가공 분야에 집중하고 있고, 콘아그라 역시 미국내 1위의 식품가공회사로서 2000년대부터는 식품가공에 더욱 집중하고 곡물유통 부문은 자회사인 피비(Peavey)에 맡김으로서 그 비중이 매우 낮아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카길, ADM, LDC, 벙기, 앙드레를 꼽아서 5대 곡물메이저로 부르고 있다.


이들 곡물메이저가 국제 곡물시장에서 행사하는 지배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세계 곡물 총생산량 가운데 약 12∼15%에 해당하는 2억5천만톤 내지 3억톤 정도가 국제 곡물시장에서 무역으로 거래된다. 그런데 이 거래량의 약 80%를 5대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곡물메이저 중에서도 카길의 시장지배력은 단연 압도적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곡물 무역의 약 40%를 정도를 카길이 장악하고 있으며, ADM과 LDC가 각각 16%, 12%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벙기와 앙드레는 각각 7%, 5%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루스터 닌(2008)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전 세계 곡물 무역의 약 80%를 장악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곡물메이저의 기업경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그다지 많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혈연 위주의 족벌경영을 하면서 기업공개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카길은 스코틀랜드계인 카길 가문을 중심으로 세계 60개 나라, 800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카길 본사는 기업 공개를 하지 않고 개인기업 형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LDC와 벙기는 각각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유대계로서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세계 각 지역에 흩어진 지사를 경유를 방식으로 거래를 하고, 때로는 조세피난처(tax heaven)를 경유하거나 스위스의 비밀거래계좌를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의 거래를 투명하게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곡물메이저는 지난 20여년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 곡물시장 지배에 장애요인이 되는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농업․식량․먹거리 정책을 철폐시켜 왔다. 규제철폐 혹은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돈벌이에 장애가 될 만한 정책과 제도장치를 무력화시켜 온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개별 국가의 주권을 약화시킨 것이다.


곡물메이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내세워 개별 국가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농업정책 및 식량․먹거리 정책을 끊임없이 축소하거나 철폐시켜 왔다. 지난 2004년 한국의 대표적인 농업보호정책이었던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들의 곡물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개별 국가가 실시하고 있던 다양한 국경보호장치(관세 혹은 비관세 장치)를 낮추거나 없애도록 만들었다. 곡물메이저기 WTO를 앞세워 개별 국가의 농업정책 권한을 빼앗아 간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WTO가 장기 표류하게 되자 곡물메이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대신 내세워 개별 국가의 독립적인 농업정책을 가로막고 있다.


카길의 부회장을 지낸 대니얼 암스투츠는 WTO 농산물협상에 미국이 제출한 ‘예외 없는 관세화’ 초안을 작성했고, 직접 미국의 협상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가 제시한 ‘예외 없는 관세화’는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WTO 농업협정문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고, 이 때문에 농산물의 자유무역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한편, 카길의 시장을 지낸 휘트니 맥밀런은 WTO 농산물협상 심사단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이 반영되는지를 감독했다. 역시 카길 사장을 역임한 어니스트 미섹은 WTO 협상 타결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곡물메이저의 입장이 관철되도록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곡물메이저가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혹은 전면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WTO와 FTA를 통해 농산물 자유무역을 전 세계에 강요한 결과 지구촌은 만성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구조로 바뀌었다. 소위 절대적 식량위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곡물메이저에게는 그 누구의 규제나 감독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껏 돈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곡물메이저는 인공위성과 전 세계 지사망을 통해 수입되는 식량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정보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개별 나라의 정보기관이나 국가기관 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수집망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곡물메이저는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제 곡물시장 지배력과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곡물투기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곡물메이저가 곡물을 대상으로 투기에 나서면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떼와 같이 국제 투기자본이 이들 주변으로 몰려 소위 ‘곡물펀드’를 이루어 돈잔치 샴페인을 터트린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목격했던 익숙한 광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