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 먹거리 기본권 (4) - 우리는 어떻게 글로벌푸드에 밥상을 내줬나

오늘은~ 2014.02.19 20:25

장경호 /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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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글로벌푸드에 밥상을 내줬나

 

최근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대략 22-23%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나머지 77-78%는 수입산 식량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며, 우리의 밥상은 글로벌푸드시스템이 제공하는 먹거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글로벌푸드시스템이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먹거리 위험사회로 끌려 들어갔다.


1980년에는 약 48%의 식량자급률을 이루었고, 1990년대 초반까지도 자급률이 약 43.2%를 기록했다. 대략 절반 가까이 자급하던 한국이 불과 20여년 사이에 1/4도 자급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곡물메이저와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더 많은 탐욕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이 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식량의 자급을 이루면서 1970년대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농산물의 과잉생산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의 농업자본 이윤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였다. 하나는 국내적인 농업구조조정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해외시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다소 시차는 있지만 미국과 유럽이 시행한 농업구조조정의 핵심은 생산면적과 생산량을 감축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손실을 보는 생산자에게 직접지불제도로 보상을 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국내 농업조정만으로는 과잉 농산물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이들은 새로운 해외시장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게 되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1986년 우르과이라운드(UR)가 시작되었고, 1993년 UR 농산물협상 타결에 이어 1995년 1월 1일부터 농업협정문이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이로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모든 나라들은 농산물 자유무역으로 편입되었다. 농산물 자유무역으로 몰락하게 된 세계 농민들은 UR 농산물협상을 카길협상이라고 불렀다. 사실이 그랬다. 곡물메이저 카길(Cargil)의 전현직 경영자들이 미국의 협상대표로 나서고, 미국 대통령의 자문역으로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자신들이 작성한 농업협정문을 미국 정부의 이름으로 관철시켰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은 전 세계를 농산물 자유무역으로 끌어들였다. 국내 농업을 보호해 주던 각종 국경장벽이 없어지거나 대폭 낮아지면서 미국과 유럽의 농산물 및 가공식품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인의 밥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유럽을 본거지로 하는 곡물메이저와 농식품기업 등 초국적 자본은 지구촌 인류의 먹거리를 지배하고 황금알을 낳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글로벌푸드시스템으로 들어갔다. 국민들 역시 공산품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농업을 희생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점차 길들여져 갔다. UR 농산물협상에 이어 2000년대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면서 정부 주도로 농산물의 시장개방은 더욱 확대되었다. 시장개방과 더불어 정부는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 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소수의 정예농가들에게 선별적으로 농지, 농기계, 시설 등 농업자원을 집중시키는 농업구조조정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지난 20년간 집중적으로 진행된 시장개방과 구조조정 때문에 우리의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은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약 60%가 넘는 농민이 농사를 포기해야만 했고, 수많은 농지가 개발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농민이 농사짓기를 포기하고, 농지가 사라지면서 식량자급률도 급격하게 떨어져 20년 사이에 자급률이 절반 수준으로 반 토막 나 버렸다. 이렇게 몰락해 버린 우리 농업과 먹거리의 빈자리는 글로벌푸드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밥상은 글로벌푸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것에 비례하여 우리의 밥상은 글로벌푸드가 주는 위험에 더 많이 그리고 더 크게 장악되어 버렸다.


이처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지난 20여년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나마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농민들의 완강한 저항이 몰락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었다는 점이다.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에 맞서 농민들은 격렬하게 투쟁했고, 그 결과 정부로부터 약간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다. 몰락의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농업과 농민을 지원하는 대책을 통해 구조조정의 속도를 다소나마 늦출 수는 있었다. 신자유주의 개방론자들은 약간의 양보와 지원 대책조차 구조조정을 늦춘다면서 반대했지만 남아 있는 농민들의 저항 덕분에 이 그나마 지금 22.6% 자급률 수준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농업의 몰락과 농민의 희생에 대해 그 정도의 지원은 해야 한다는 국민 일반의 정서도 한몫 했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지금 보다 더욱 낮아졌을 것이고, 우리 밥상과 먹거리의 위험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농업과 먹거리를 위해 싸우는 농민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