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온실은 세종 시대에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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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온실이 조선초 세종때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

 

며칠전 공동배양장 난실 천장에서 떨어지는 결로로 인해 전등에 물이 스며들어 합선으로 인한 정전이 있었습니다. 몇분이 수고해 응급복구는 해 놓았으나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할까봐 지금은 난실 형광등 전원을 모두 내려 놓은 상태입니다. 온실 천장 결로 현상은 전기배선 뿐만 아니라 재배 작물에도 일조량 감소를  가져오는 등 식물생장에 나쁜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해결해 보려고 문헌을 찾던중 우연히 알게된것이 세종때 과학적인 현대 모습과 유사한 온실이 만들어 졌으며  세계최초라고 알려진 1619년 하이델베르크 온실에 비해 170여년 앞선 온실이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단순히 자연광을 이용한 수동적 온실은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온실은 자연광만이 아닌 온돌을 이용한 지중 가온시설과 가마솥에 물을 끓여 발생한 증기를 목관을 통해 온실 내부로 전달하는 등 보다 능동적인 온실이였다고 합니다.

 

아란회원님들을 위해 찾아낸 자료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소장 이한기)가 최근 국역화를 마친 ‘산가요록(山家要錄)’ 중 ‘동절양채(冬節養菜)’ 편에 따르면 당시 온실은 북쪽 면이 높고 남쪽 면이 낮았으며, 진흙과 볏짚으로 쌓은 흙벽돌로 벽을 쌓고 구들로 만든 바닥 위에 30㎝ 정도의 배양토를 깔아 채소와 꽃을 재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자연광의 효과를 최대로 이용하기 위해 지붕에는 유지(油紙·기름 먹인 한지)를 씌워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도록 했다고 책은 기록하고 있다. 기능에 있어서도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하는 한편 온돌을 이용한 지중 가온시설과 가마솥에 물을 끓여 발생한 증기를 목관을 통해 전달하는 등 발생한 수증기를 온실 내부에 전달하는 공중가온(空中加溫)의 2가지 방식을 사용하여 현대적인 의미의 온실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산가요록’은 세종시대인 1450년 의관(醫官)으로 봉직한 전순의(全循義)가 당시의 농업과 생활에 관해 한문으로 필사한 생활과학서로서 ‘산가요록’에 적힌 동절양채에 대한 원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造家大小任意三面築蔽塗紙油之南面皆作箭窓塗紙油之造突勿令煙生突上積土一尺半許春菜皆可載植於夕令溫勿使入風氣天極寒則厚編飛令掩窓日瑗時則撤去日日酒水如露房內常令溫和有潤氣勿令土白乾又云作(光)於築外掛釜於壁內朝夕使釜中水氣薰扁房內

 

제일 먼저 임의의 크기로 온실을 짓되 3면을 막고(蔽)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塗紙油之). 남쪽면도 살창을 달고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잘 처리하고 온돌 위에 한 자 반 높이의 흙을 쌓고 봄채소를 심는다. 건조한 저녁에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되, 날씨가 아주 추우면 반드시 두꺼운 날개(飛介: 오늘날의 멍석과 같은 농사용 도구)를 덮어 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철거한다. 날마다 물을 뿌려 주어 방 안에 항상 이슬이 맺혀 흙이 마르지 않게 한다. 담 밖에 솥을 걸고 둥글고 긴 통을 만들어 그 솥과 연결시켜 아침 저녁으로 불을 때 솥의 수증기로 방을 훈훈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 기록을 통해 겨울철에 꽃과 채소를 재배해 궁중에 진상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에 대한 의문점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온실의 모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양수리 세미원에 복원된 조선시대 온실

 

통기성, 습도조절, 채광성 3박자 갖춰

 

문헌을 토대로 최근 복원과정을 거쳐 온실에 작물을 재배한 결과 식물 재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습도의 경우 한낮에 해당하는 13시에는 40% 정도였지만 나머지 시간대의 습도는 생장에 적합한 70%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겨울에 난방을 하면 실내 습도가 30% 이하까지 내려가므로 실내 습도를 올려줄 필요가 있다. 상대습도가 낮으면 식물이 손실된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증발시켜 시들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식물 생장은 일반적으로 상대습도 50∼80%에서 일어난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가요록’에 의거해 온돌을 설치하면 실내공기가 따뜻해지는 효과는 있으나 습도가 너무 낮아지는 결점이 생긴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실 뒤에 가마솥을 걸고 수증기를 공급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한지의 사용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온실의 경우 외기온과 내부의 온도 차이 때문에 채광부분에 결로 현상이 생긴다.

 

결로 현상은 작물이 변색되는 원인이 되고, 특히 결로된 이슬이 식물에 떨어지면 차가운 온도 때문에 상처가 생기므로 병원균이 침투하는 등 식물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근래에는 온실에 결로가 생기지 않도록 결로 방지 페인트를 칠하기도 한다. 복원한 온실의 경우 창호 부분에서 결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온실을 만들 때 창호지의 3대 특성, 즉 통기성과 채광성 그리고 습도 조절 능력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선조들의 슬기를 다시금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산가요록’에 기록된 온실이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온실로 부각될 수 있는 이유는 온실이 갖추어야 할 3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의 특징적 난방 방법인 온돌을 사용해 겨울철 난방을 도모했고, 둘째는 한지에 기름을 발라 채광을 통해 실내온도를 높이고 습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 셋째는 창호지만으로 습도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마솥을 걸고 물을 끓여 수증기를 실내로 유입해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올려 주는 복합적인 온실이 되도록 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온실이 기록된 ‘산가요록’은 현재 국보 지정을 추진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