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모시고 있습니까? '천연의 농부' 한원식

광주에서 두 시간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자면야 그 길을 어찌 멀다 말하랴. 하지만 비포장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은 그 집을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진 아주 먼’곳으로 느끼게 했다. 순천 승주 같은 행정구역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한원식씨의 주소지는 자연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누군가 살다 떠난 집. 오랜 세월 버려져있던 집이다. 그래서 그는 “길가다 주운 집”이라 말한다. 그 집을 대충 고치고 손봐서 산 지 6년 됐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던 옛사람의 말처럼 앞마당에선 조계산이 마주 바라보인다.

이 깊은 산 속에서 그가 가진 건 이 자연 뿐.

어둑신한 방안엔 촛불이 켜져 있었다.

“전기가 무슨 소용 있어요?”

그는 ‘불필요한 것들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전기조차도 그에겐 불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걸까. “아니요, ‘자족성’이 빠진 무소유란 한갓 말장난이지요. 저는 다만 불필요한 것들을 덜고 덜어내는 ‘가난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불편하지 않은가,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는가, 그런 질문은 그에겐 우문이었다. 불편이니 적응이니 하는 말 자체가 도시인들의 엄살떠는 말일 뿐. 그는 사람이 시도하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 먼저 생각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이 할 일이란 씨 뿌리는 일, 즉 밥 짓고 밥되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는 그는 이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은 충청도. 전라도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은 걸까. “벼농사를 제대로 지어 볼라고 옮겨왔던가, 좋아하는 감을 실컷 먹을라고 옮겨왔던가, 그게 무어 중요할라구, 허허.”

감 이야기가 나왔으니 똥 이야기를 해야겠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왔을 땐 칙간이 없었어요. 감나무 뒤에 가서 ‘똥 모심’을 하면서 똥을 모신 감이니 얼마나 맛있으랴 했지요. 그런데 웬걸 너구리가 저녁마다 와서 다 잡수시네? ”

원래 어린 아이가 누는 건강한 황금빛 똥은 개들도 알아보고 좋아한단다. 그러니 개가 똥을 모실 수 있게만 똥을 누면 그는 건강한 사람일 것. 그는 “똥은 안 늙는다”고 말한다. 다만 사람이 잘못 살아 똥이 늙어지는 것일 뿐.

똥이 안 늙도록 잘 살려면? 그의 대답은 “밥 모심을 잘해야 한다”. 밥을 먹는다가 아니라 모신다? ‘밥 모심’은 단지 밥을 취取하는 게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것을 이른다.

“밥 먹는 시간이 10분이 뭐에요? 밥을 모시는 시간은 내가 되는 시간이고 나를 맞이하는 시간인데….”

그는 “한 술에 140번 정도는 씹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에이 어떻게 140번이나?”반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쫌 봐줘서 130번 정도는 씹으세요.”

그는 “소식小食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씹느냐 안 씹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쌀 속에는 140여가지 미량원소가 들어있어요. 우리 혀는 이 맛을 다 느낄 수 있지요. 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니 밥상에서 저절로 축제가 일어납니다.”

그는 밥 중에서도 “현미밥을 모시라”고 한다. “서양의 영양학은 칼로리 개념만 있고 ‘작용’이란 개념이 빠져 있지요. 현미는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지만 흰쌀은 썩어버리잖아요. 흰쌀에는 작용 성분이 제외돼 있어요.”

도시인들에게도 말한다. “당장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밥그릇농사라도 제대로 지으며 살아라.”

그에 따르면 잘 짓는 밥그릇농사는 현미잡곡밥을 소식하는 것이고, 하루 2식하는 것이다. 2식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게 건강에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적게 먹는 삶, 과소비하지 않는 삶,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눔’이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지향이다.

그러면  ‘올바른 밥모심’을 실천하고 사는 그는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밥모심’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그는 “제 몸이 아주 잘 빠졌어요”하고 농을 건넨다. 짓궂은(?) 사람이 있어 “한 번 벗어보세요” 하면 정말 웃옷을 벗는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삶’처럼 ‘군더더기 없는’강건한 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의 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옷을 벗는다든지 그 모든 행위가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런 그의 무구함이다.

지금은 그렇듯 건강한 몸이지만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몸 어느 한 구석 안 아픈 데가 없이 온갖 병치레가 심했단다. 그 아픔을 통해 그는 ‘앓이’를 터득했다.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병’이란 말을 쓰지 않고 ‘앓이’라고 한다. ‘내 몸이 스스로 알아차려 알아서 한다’는 뜻. 병이라 하면 물리치고 제거하고 몰아낼 적대적 대상으로 보게 되지만 앓이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라는 의미고, 급하게 죽지 않고 더 살게 몸속의 독소를 가장 약한 것으로 몰아주는 의미라 한다. 그는 ‘앓이’를 통해 우리 몸의 가장 취약한 데를 알 수 있으니 ‘앓이’를 지극정성으로 잘 모시면 그로부터 ‘살림’의 힘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건강’을 좇지만 그는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도 믿는 그는 한 때 관행농으로 성공해 돈도 많이 벌었지만 서른한 살 되던 해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데 농약으로 생명을 해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는데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어요. 근데 한 번도 우리 손주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신 적은 없어. 다만 ‘우리 손주 바른 길로 진리로 이끄소서’라는 기도였지요. 그래서 내가 우리 할머니 덕에 바른 길로 이끌렸는가 모르지요.”

그렇게 배추농사를 짓다가 어느 해 큰물이 져서 배추밭이 다 잠겨버렸다. 상심해서 밭에 나갔는데 다른 배추들은 다 널부러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싱싱한 배추 한 포기가 있더란다. 바로 밭 귀퉁이 갓자리에 심은 배추. 갈아지지 않은 땅의 배추였다. 그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배추스승’이라 일컫는 이유다.

“갈아지지 않은 땅에는 순환이 있고 숨통이 열려 있어 물이 차있어도 안에서 숨을 쉰 거지요. 땅을 가는 것은 흙의 모둠성과 온전성을 해치고 지렁이 딱정벌레도 죽이는 일이에요.”

그때부터 그는 ‘땅을 갈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다. 그 다음해 갈지 않은 밭에 배추농사를 다시 지었다. 농사는 잘됐으나 배추값이 폭락한 때여서 폭삭 망했다.

“배추밭 숨통은 터졌는데 왜 내 삶의 숨통은 안 터지나”는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돈이더란다.

“돈이 무엇이간대? 결국 날 때부터 없는 것,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부터 그는 ‘돈을 꾸지 않는 삶’‘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 왔다. 그들 부부에겐 통장이 없고 저축이 없다. 노후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는 믿음이 가장 든든한 ‘빽’일 뿐.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다보니 그는 사고 파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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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가 생명인데 어떻게 값을 매기나요. 값에서 욕망이 생겨요.”

그 욕망을 없애는 것은 조금만 소비하고, 남는 것은 나누는 삶이다. 그가 ‘가난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유다. 비현실적이라고?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이 근처에만 해도 10여 가구 생겨났다. 그렇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우리 식구 먹고 남는 게 있어요.”

그 남는 것은 어디다 쓰나? “님 맞이하는 데 쓰지요.” 그 님은 손님이다.

그의 집에는 농사 배우러 오는 이들, 앓이하는 이들이 늘 들락거린다. 그가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러 오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 모두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누가 오든 흔연히 ‘밥상’을 차려내 ‘밥모심’을 같이 한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의례적 말엔 손사래를 친다. 덧붙여 “정 그러면 똥모심을 잘 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농사도 그렇고 밥모심도 그렇고 사는 게 날마다 축제이다.

“노동이 아니라 놀이니까 신명이 나고 춤추듯이 하지요. 밭에서 일하는 것도 춤사위요, 똥장군 지고 가는 것도 춤사위지요. 자연의 모든 것이 춤사위에요. 똥거름 뿌리면 똥이 ‘너울춤’을 추며 날아가잖아요. 힘들 때야 왜 없겠어요. 춤추는 것도 되게 추면 힘들잖아. 다만 그 춤사위를 잘 넘나들어야지요. 쉴 때는 쉬어주고…”

마음 없이 일하는 것은 억지춤이란다. 억지춤추기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느냐. 뭐든지 자연스럽게. ‘자연의 농부’인 그가  들려주는 말이다. <
남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