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승주에서 자연농법과 자연의학을 실천하는 한원식 선생

전남 승주에서 자연농법과 자연의학을 실천하는 한원식 선생이다.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전남 승주에서 자연농법과 자연의학을 실천하는 한원식 선생이다. 나로서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분이라 반갑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한선생은 하고 싶은 요점을 꺼낸다.


“이 동네 분들과 자연농법과 의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갑자기 방문한 걸음이라 이웃들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대신에 아내와 나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은 30살 무렵부터 자연농법을 실천해왔으니 얼추 30년 가까운 세월을 자연과 더불어 산 셈이다. 자연에 산다는 건 일년 아니 하루를 살아도 보고 배우는 게 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다. 누구든 자연에서 보낸 경험이 있다면 귀 기울이면 배우는 바가 있다. 그러니 한선생은 30년 세월의 무게만큼 이야기도 새롭다. 기계를 안 쓰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도 9만 제곱미터(대략 3000평) 짓는다. 이 가운데 벼농사도 두 마지기 정도를 자연농법을 짓는다. 두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몇 가지만 간추려 본다.


첫째 ‘참’을 강조한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병이란 없는 것이며, 꾸밈이며 거짓에 불과하다. 그는 병 대신에 ‘앓이’라는 말을 쓴다. 배앓이, 속앓이에 앓이. 앓이는 ‘알다’에서 나온 말이란다. 자기 몸이 스스로 알아서 아픈 거니까 앓이가 된다. 병이라 보면 참을 못보고 자꾸 아픈 걸 몰아내려고 하지 왜 아픈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앓이’를 통해 우리 몸을 알 수 있으니 ‘앓이’조차 잘 모셔야 한다. 아픈 사람이 참에 이르자면 단식을 중요하단다. 몸이 불편하다면 먹지 않아야 한다. 그 단적인 보기로 선생의 장모 이야기를 했다.

연세가 여든이 넘은 장모가 걸음걸이가 불편한 상태로 사위집에 왔다.

“그 몸으로 어찌 살아요? 굶으세요.”

심지어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면 죽어라는 말까지 했단다. 장모는 사위를 믿고 굶기 시작. 닷새를 굶으면서 다리가 정상이 되고 다른 지병도 나았단다. 그러면서 식욕도 살아나 뭐든 맛나다고 한단다. 지금은 농사일을 아주 열심히 할 만큼 건강해졌단다. 한선생 역시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 머리카락만 희끗하지 그 외는 젊어 보인다. 몸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균형이 잡혀있으며, 얼굴은 맑다. 그래서인지 그이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한선생은 ‘참’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게 먹고, 오래 천천히 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오래 씹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 근거가 약하다. 한 선생은 위산과 침샘의 화학성분으로 설명을 했다. 위산은 강한 산성인데 침은 중성이다. 소화가 잘 되자면 충분히 씹어 침샘을 많이 위로 보내주어야 음식이 잘 중화가 되어 소화가 잘 되고 덩달아 힘도 잘 솟아난단다. 이 부분은 보다 더 공부해볼 부분이겠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침에는 탄수화물을 녹이는 소화효소가 있는데 이는 중성에서만 작용을 한단다. 그러니까 위로 넘어가기 전에 입안에서도 충분히 소화가 되는 과정이 있다. 이래저래 침이 중요하다. 소화는 기본, 면역력을 높여주고, 해독 작용도 한다. 또한 침은 Ph 6.5~6.9 정도의 중성에 가깝고, 위산은 pH2 에 가까운 강산이다.)

침이 잘 나오게 하자면 씹는 횟수도 100번이 넘어 130-40번을 강조한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밥 모심 아닌가.

밥에 대한 그이 생각도 재미있다. 모든 음식을 다 밥으로 생각한다. 무나 과일 또는 먹는 풀 하나하나 다 밥으로 여긴다. 여기서 밥은 바로 몸이 되는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밥상에는 음식 가짓수를 있는 대로 많이 올린다. 올릴 수 있는 음식이 스무 가지가 되면 그 모두 다. 말하자면 밥상이 잔치가 된다. 그렇다고 과식을 하자는 건 아니다. 만일 과일을 많이 먹으면 밥을 두 세 술 먹기도 하고, 밥을 더 먹으면 다른 음식을 조금 먹기도 한다. 소박함이 주는 풍성함이다. 억지로 하는 풍성함이 아닌 자연스런 풍요.


오래 씹으면 소식도 저절로 된다. 오래 씹어 삼키면 밥 한 술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위에 밥이 차는 걸 느낄 수 있단다. 소식小食은 양의 문제 이전에 시간의 문제 즉, 오래 씹느냐 안 씹느냐에 달려있다. 밥 한 술을 100번 이상 씹는다면 식사 시간이 한결 길어질 듯 하다. 

한 선생은 하루 두 끼를 권장한다. 아점을 열 두 시쯤 먹고, 저녁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 먹는다. 부인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을 한단다.

참 다음으로 그이가 강조한 건 일이다. 일하고 나서 밥을 먹어야 한단다. 일을 무리해서도 안 되지만 일을 안 하고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주장하는 거와 같다. 

한선생 이야기를 듣고 또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검색하면서 내 생각이 하나 정리가 된다. 바로 ‘하나를 잘 하면 모든 걸 잘 한다’이다. 씹는 걸 잘하면 소화도 잘 되고, 소화가 잘 되니, 면역력이 높아 건강하다. 소화를 잘 시키니 모든 일에 의욕도 샘솟고, 힘도 잘 쓸 수 있다. 그러니 적게 먹어도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생각 역시 몸이 건강하면 밝고 건강하게 샘솟는다. 

손님이 돌아가고 나자 그동안 가볍게 먹어오던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저녁 여덟시쯤 되니 배가 고프다. 좀만 기다려보자. 그랬더니 침이 자꾸 고인다. 침을 삼켰다. 침이 달다. 서서히 배고픔은 가셨다. 대신에 소변이 자주 나온다. 먹은 거라고는 침 밖에 없는데 한 시간마다 오줌을 눈 거 같다. 내일부터 더 천천히 먹고 더 적게 먹는 실험을 해 볼 생각이다. 어쩌면 씹는 행위 자체도 넓은 뜻에서 요리 가운데 하나가 될지 모르겠다. 한선생과 만남은 내게 좋은 공부가 된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