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 농부 한원식 선생의 자연(천연)농법과 땅 이야기

승주 농부 한원식 선생의 자연(천연)농법과 땅 이야기 

 

한원식 선생은 순천 승주의 3000평 산밭에서 퇴비를 만들지 않고, 작물도 팔지 않으며 농사를 짓고 있다. 30년간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그의 땅과 농사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생명, 즉 자신이 키운 작물을 사고파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땅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원식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의 땅과 농사 철학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 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 속 모듬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질은 하지 않아.”

이근이: 오면서 보니 다랑이논이 많던데, 농사 규모가 클 수가 없겠어요.
한원식: 내가 농사짓는 다랑이논이 만든 지 150년 된 땅이지. 전부 3,000평 정도 짓는데, 논은 500평, 나머지는 논을 밭으로 쓰지.

이:
3,000평을 두 분이 짓는다고요? 기계도 안 쓰실 거 아니에요.
한: 올해는 예초기 좀 썼어.

이:
천연(자연)농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한: 배추 농사짓다가 배추 통해서. 배추 밭에 물이 찼는데, 밭을 갈아서 심은 배추는 죽어버리고 밭을 갈지 않고 심은 배추는 잘 자라는 거야. 그때부터 자연농법을 했으니까 30년 됐지. 그 다음해부터 밥을 사고팔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했고. 29년 됐어.

이:
선생님 고향은 어디인지요?
한: 충남 공주. 고향을 떠나게 된 게 자연농업 터득하면서. 그전엔 관행농 하다가, 유기농 하다가, 자연농을 하게 됐지. 이렇게 산속으로 온 건 좋은 자리 찾아서 들어온 게 아니야. 나는 늘 안 좋은 곳에서 자연농을 했어. 좋은 곳에서는 돈이 들어가니 내가 발붙일 곳이 없어. 땅값도 비싸고. 고향을 떠난 것도 내 땅 없이 농사를 지었는데 돈을 안 버니까 세를 못 주잖아. 그런데 여기는 그 반대지. 이 집도 공짜로 지내고 있고. 

이:
선생님이 여기 오기 전에 그 전 분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 안 했겠어요.
한: 아니, 사용했지. 그런데 내가 왔을 때 한 12년 묵어 있었어.

이:
그렇게 오래 묵었으면 그전에 사용한 화학비료 같은 건 자연적으로 퇴비화되었네요.
: 자연농은 상관없어. 땅은 좋고 나쁜 게 없어.

이:
그렇지만 망친 땅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화학비료나 농약으로 황폐화된 땅은 새롭게 일구어야 하잖아요.
한: 상관없어. 땅이 어떤 상태든지 작물이 적응을 하니까. 공해 문제가 첫 번째가 아니라 바르지 못한 문제가 첫 번째야. ‘이 땅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느냐’로 가야지 ‘이 땅에 무엇을 심어 먹느냐’로 가면 모순이지. 오염됐으면 오염된 대로. 땅을 살리기는 어떻게 살려. 땅은 이미 살아 있는데, 말부터 잘못된 말이지. 땅이 왜 죽어? 땅은 안 죽지. 땅이 산성화되면 산성화된 땅에 맞는 그런 생명이 오시잖아. 습지는 습지의 생명이 오시지, 메마른 데는 메마른 생명이 오시지. 우리가 순응해가야 되지. 흔히 자급자족을 말하는데, 이게 잘못된 말이야. 자급이면 자급이고 자족이면 자족이지. 말을 따로 써야 돼. 자급이란 말은 이룬다는 뜻이고, 자족이란 것은 절로 된다는 뜻이야. 인간이 망쳤으면 망친 대로 스스로 가는 길로 바르게 시작하면 문제가 없어. 또 요즘 생명농업이라고 하는데 거래가 들어가면 생명농업이 아니야. 나눔이 돼야지. 농업인이 아니라 농사꾼이 돼야지. 자연농이라도 농업인이 있어.

이:
그럼, 농부라는 말은요?
한: 농부하고 농업인은 다르지. 농부는 농사꾼을 높인 말이야. 밥을 나눔으로 대할 때에만 농부라고 할 수 있지. 농업인들이 이 땅이 내게 무엇을 주시느냐고 가지 않고, 내가 이 땅에 무엇을 심느냐로 가잖아. 나눔의 바탕이 완전히 상실됐지. 아주 농사짓는 사람들이 장사꾼의 바탕을 깔고 가니까 참,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지. 세상의 구조가 우리 뼛속 깊숙이 파고 들어와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지. 

이:
선생님은 섬김, 나눔,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하시는 거네요.
한: 나는 해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극진하게 일해. 그랬을 적에 일이 고통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일이 놀이가 돼. 나눔으로 가니까 놀이가 되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놀이가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잖아. 게임과 놀이는 달라. 게임은 싫증나고 놀이는 싫증 안 나지. 

이:
자연농법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기 전에 어떻게 관리해 주시는지요?
한: 김매고, 씨 뿌릴 정도로 골은 내주고 씨를 뿌리지. 그 위에 흙 덮어주고. 호미질도 될 수 있는 한 땅을 뒤엎지 않을 정도만 해주지. 

이:
땅에 유기물이라든가 따로 퇴비는 안 하시나요?
한: 퇴비는 안 하지. 변소에서 나오는 것만 처리를 해야 하니까 뿌려 주는 정도지. 

이:
그럼, 고추처럼 소위 다비성 작물은 키우기 힘들지 않나요?
한: 고추는 다비성이 아니지. 거름하면 안 돼. 땅이 걸면 탄저병 오지.

이:
더 많이 수확하려고 거름하고, 거름하면 병이 오고, 악순환이네요.
한: 그러니까 땅이 내게 어떻게 주시느냐로 가야지. 거른 땅에 고추 심으면 안 되지. 

이:
몇 가지 작물을 심으세요?
한: 무엇을 안 심느냐고 물어봐야지. 올해는 양배추 씨를 받아놓은 게 없어서 못 심었어. 웬만한 작물은 다 심은 거 같아. 지금 이 밥에 한 열다섯 가지 들어갔어. 벼, 밀, 찰보리, 메보리, 콩, 팥, 수수, 옥수수, 기장, 율무, 차조, 메조, 차수수, 메수수. 

이:
수확량이 꽤 될 텐데, 사고팔지 않으니 먹고 남는 건 어떻게 하시는지요?
한: 아픈 사람들 나눠 주지. 주로 암환자들인데, 만남이 되는 대로 나눠 주지. 그리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맞이하면서 나눠 먹고. 

이:
선생님 밭에서 돌려짓기하는 원칙 있으세요?
한: 특별한 원칙은 없지. 굳이 순서를 말하라면 한 자리에 밀, 보리 심고, 다음해 배추 심고, 다음해 고추 심고, 다음해 땅콩 심고, 그렇게 한 바퀴 도는 데 5년 걸리지. 

이:
땅콩은 콩류가 땅에 질소질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심는 거죠?
한: 그렇지. 땅이 걸면 옥수수를 심어서 거름기를 빼고 고추를 심어. 걸지 않은 곳은 콩을 심어서 거름기를 보충하고. 

이:
퇴비를 안 하는데, 땅이 걸다 안 걸다를 어떻게 아시는지요?
한: 농사 지어봐야 알지. 작물이 잘 되는 건 땅심이 깊으냐, 깊지 않느냐에 따라서 가뭄을 많이 타기도 하고 타지 않기도 하지. 또 땅의 구조가 살이 많으냐, 살이 얕느냐 여기서 좌우되지. 예를 들어 물 빠짐이 덜 되는 땅은 걸지. 작물은 거의 물이 길러내는 거야. 

이:
물과 땅의 관계를 잘 알아야겠네요.
한: 그럼. 

이:
여기는 거의 천수답 형태 같은데, 비가 안 오면 물대기가 힘들지 않나요?
한: 아니지. 일년 내내 솟아나는 물이 있어. 그런데 물이 차서 벼농사 하기는 안 좋지. 

이:
그래서 물길을 멀리 돌려서 쓴다고도 하던데.
한: 그런 거 없어. 새벽에 논물이 차갑게 식었을 때 얼른 물을 대서 해가 뜨면 따뜻하게 데워지는 원리를 그냥 이용해. 땅을 안 가니까 논은 물 빠짐이 심하지. 물을 오래 가둬두기 위해 논 두둑은 찰흙으로 막지. 또 예초기로 논바닥을 한 번 훑고 지나가면 흙탕물이 생기니까 풀은 제거되고 물도 가둬져. 흙탕물이 틈새를 메워주는 거야. 밭은 1m 80cm로 두둑 지어놓으면 물을 가둘 수 있고. 

이:
보통 1m 20cm로 하는데, 1m 80cm면 꽤 넓은데요.
한: 물 빠짐이 심한 땅이니까, 거기 맞춰서 달라지는 거야. 나는 인위적으로 땅을 갈아엎지 않지만 만약 땅을 깊이 갈려면 밀, 보리처럼 뿌리가 깊이 내리는 작물을 심으면 되지. 옥수수를 심으면 땅의 통로를 굉장히 크게 만들지. 콩은 땅을 굉장히 부드럽게 만들고. 사실 땅을 부드럽게 하는 건 습기야. 그러니까 땅과 물의 관계를 잘 알아야 농사가 잘되지. 

이:
보통 땅을 간다고 할 때 지렁이도 좋은 일꾼이잖아요.
한: 난 지렁이는 별로야. 지렁이 많으면 두더지 많아서 힘들어. 두더지 많으면 쥐가 또 많아지고. 여기 산속에는 쥐들이 파, 양파까지 다 먹어. 그러니 땅콩, 고구마는 남기지를 않아. 작년엔 쥐가 다 먹어서 고구마를 캐지 못했어. 고구마는 퇴비하면 안 돼. 고구마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 돼. 

이:
기후변화가 갈수록 문제잖아요. 농사지으면서 누구보다 먼저 피부로 느껴지시지요?
한: 상관없어. 올해 햇볕이 안 좋았잖아. 그 안 좋은 게 벼농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거야. 거름을 했을 때 상관관계가 이뤄지지. 걸었을 때 벼 잎은 흡수 능력이 떨어져. 그런데 거름을 안 하면 빛이 없어도 흡수 능력이 높아지거든. 그러니까 생명이 펼쳐지고 자정 능력이 더 이루어지는 거야. 

이:
어느 땅에 가서도 선생님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한: 그럼. 그게 땅의 본래 모습이란 말이야. 땅을 분류하면 안 되지. 그리고 땅을 살린다는 말도 성립이 안 되지. 시장의 논리에 맞는 감 종자를 여기 땅에 심는다고 해봐. 그러면 땅을 살려야 된다는 논리가 나오지. 내가 갖고 있는 벼 종자가 50가지는 돼. 지금 진흥청에서는 화학비료를 줘야 하는 종자를 찾아내서 농민한테 보급하는 거고, 나는 전혀 거름하지 않고 되는 종자를 해마다 심어보면서 찾아내는 거야. 이 땅은 햇빛이 짧고 물이 차가운데, 그러면 벼 종자가 땅에 맞춰 가는 거야. 땅은 그대로 있잖아. 벼 종자는 움직이는 거고. 움직이는 게 바뀌어야지, 땅이 어떻게 바뀌어. 이 땅에 맞으면 번식이 이뤄지고 안 맞으면 자기 맞는 곳으로 가야만 되고. 거름 안 해도, 햇빛이 적어도 되는 종자가 생명을 펼치기 위해서 이뤄진다는 거야. 

이:
그럼, 여기 땅에서 나는 종자를 매년 채종하시면서 가장 잘 적응한 종자를 찾아내는 거네요.
한: 그래야지. 없는 것은 구해 오지만 계속 여기서 반복해서 심어보면 이 땅에 맞는 종자가 나오는 거야. 

이:
그러다 보면 기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씨앗도 적응을 해서 나오겠어요.
한: 적응하는 종자가 또 나오지. 여기서 교배가 되면 새로운 종자가 나오는데, 그 새로운 종자는 거름을 줘도 되는 종자, 거름을 안 줘도 되는 종자, 수없는 종자가 다 나와. 그럼, 이 땅이 무엇을 주시느냐고 가는 그런 종자를 여기에 모셔야지. 완두콩 개량 종자는 여기가 추워서 안 맞아. 토종 완두콩 종자는 추위에 강해서 여기서도 겨울을 나지. 아무리 수확이 많아도 개량종은 여기 심으면 죽어 버리니 수확을 전혀 할 수 없지. 반대로 저 아래에서는 얼어 죽지 않으니까 토종을 심을 필요 없지. 토종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닌데 사람들은 토종만을 고집하거든. 농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질이 좌우되는 거지, 토종이 질을 좋게 하는 건 아니야. 토종이라고 해도 거름을 많이 하면 빛을 받는 능력이 떨어져서 쭉정이가 나오고, 개량종이라도 거름 안 하면 빛을 받는 능력이 돼서 열매를 튼실히 맺지. 거름이 넘치면 일을 안 해. 모든 씨앗은 떨어지면 뿌리가 생겨. 거름이 없으면 뿌리가 일을 잘하잖아. 깊이 내리잖아. 깊이 내리니까 땅 속의 모든 생명을 모두 흡수해. 누구는 사람이 갖고 있는 씨앗은 야생을 잃었다, 이런 착각을 하거든. 씨앗은 야생을 안 잃어. 사람이 야생으로 못 가게 하는 거지. 개량종이든, 외국 씨앗이든, 모든 씨앗은 본래의 모습이 있지. 내가 잣 묘목을 몇 그루 키우고 있는데, 국산 잣을 여러 번 심었지만 싹이 안 나서 결국 중국산 잣을 심었더니 싹이 났거든. 여기 땅에 맞는 종자를 모시면 되는 거야. 

이:
GMO 종자도요?
한: 그럼. 벼를 심으면 씨앗이 나고 자라나잖아. 개량종은 안 자라나? 자라는 자체가 야생이란 말이야. 땅이 스스로 뿌리가 들어가게끔 갖춰져 있는 거야. 이미 뭇 생명이 나눔의 바탕이 되기 위해서 어디서든 적응해서 펼쳐져 나온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유기농은 펼쳐지지 못한다는 말이지. 땅을 살린다는 말 자체가 펼쳐지는 걸 못 봤다는 거야. 실은 펼쳐지지 못하는 농사잖아. 시장원리에 맞춰야 하니까. 

이:
세상엔 이런 농부도 있고, 저런 농부도 있고, 공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한: 공존은 공존인데, 고통의 공존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잖아. 나만 행복하면 안 되잖아. 모두가 행복해야지. 남을 착취하지 말고. 

이:
유기농을 하든 자연농을 하든 거래를 하는 순간 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네요.
한: 나는 누구를 비판하자는 건 아니지. 바탕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알고, 참으로 가자는 말이야. 참으로 가야만 나도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거야. 모두가 나처럼 세상에서 벗어나란 말은 아니야. 

이:
선생님 얘기 들으면 원래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얘기 같아요. 인간이 처음 곡식을 재배했던 때처럼.
한: 그렇지. 내가 고향의 삶이 아니고 본향의 삶이라고 하잖아. 

이:
결국에 농부는 순응하는 사람이 돼야 하네요.
한: 땅과 같이 놀아야지. 우리는 갖춰진 이 땅에 초대돼 왔어. 갖춰진 잔치 집에 초대됐는데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