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으로 미래를 지키는 사람들

여성농민들, 토종씨앗으로 식량주권 지키기 나서다 
“종자가 다국적 기업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건 결국 지구의 재앙을 의미한다. 종자가 기업의 손아귀에서 통제된다면 종자는 사라지고, 인류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안노벨상을 받은 인도의 생태환경운동가 반디나 시바 씨가 우려한 것처럼 우리의 식량주권은 이미 위협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신자유주의 농업정책,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으로 식량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 밥상은 유전자변형식품(GMO)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씨앗도 마찬가지다. 본래 씨앗은 농민의 것이었다. 농민들은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으면 그 씨앗을 이듬해에 다시 심으며 대대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정부 보급종이 확산되면서 씨앗은 시장에서 파는 것이 됐다. 이제 씨앗은 다국적 종자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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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기를 이겨내려고 여성농민들이 선택한 게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다. 이는 여성농민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사무국장은 “예로부터 좋은 씨앗을 골라 갈무리하고 보관하는 건 여성농민들의 고유한 역할이었다”면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농업에서 이런 여성농민의 가치를 되찾는 사업”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또 신 사무국장은 “농사의 시작과 끝인 종자를 다국적기업에게서 모두 사다 쓰고 있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것은 신자유주의로부터 농업을 끊어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구례 운조루서 ‘둘레길’ 만난 ‘토종씨앗’
지난달 28일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선 ‘토종씨앗 채종포’ 씨뿌리기 행사가 열렸다. 임채남 구례군 여성농민회장과 심문희 전여농 토종씨앗사업단장, ICOOP생활협동조합 회원 180여명이 함께 씨를 뿌렸다. 채종포는 토종씨앗을 받기 위해 마련한 밭으로 선비콩, 진지리콩, 오가피콩, 오리알태, 서리태, 개골팥, 발간팥, 이팥, 목화 등 다양한 토종씨앗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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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 채종포를 마련한 오미리엔 조선시대 전통가옥으로 유명한 ‘운조루’가 있다. 이곳은 지난달 13일 개통한 지리산 둘레길 구례구간의 종점이자 시작점이다. 운조루 앞에 1천 평의 땅을 임대해 채종포를 만든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심 단장은 “운조루는 지리산 둘레길의 종점이자 시작인 곳이다. 둘레길은 느리게 걷는 길이고 사색하는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 또 지역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다. 이런 둘레길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게 토종씨앗”이라며 “둘레꾼들이 토종씨앗의 중요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이곳에 채종포를 만들었다”고 취지를 소개했다.
류미혜 ICOOP생협 광주물류센터장은 “우리 농업이 살아야 식품안전도 지킬 수 있다. 그 시작이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라는 걸 조합원들이 인식하는 계기를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ICOOP생협 회원들은 따가운 햇살에 땀을 흘리면서도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에 동참했다는 데 뿌듯해 했다. 성남 분당생협의 유근영 씨는 “다국적기업이 씨앗을 독점하고 있다는 걸 TV에서 봐서 관심이 있었다. 이렇게 토종씨앗을 지키는 데 함께해 기쁘다”며 “우리 아이들이 토종씨앗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돼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하얀동부(콩)를 심은 김해 생협의 추재경 씨는 “다국적기업의 종자전쟁이 시작된 걸 책으로 봤을 때 암울했는데 이렇게 토종씨앗을 지키는 농민들이 있어 기분 좋고 직접 심어볼 기회가 있어 기쁘다”며 “귀한 씨앗이라 정성스레 심었다”고 말했다. 김해 부곡초등학교 6학년생인 양혜경 어린이는 “아빠랑 콩밥을 싫어해 먹지 않았다. 여기 와서 콩 심는 게 힘든 걸 느끼고 콩의 중요성을 알게 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도 콩의 소중함을 알려줘야겠다”고 뿌듯해 했다.

연말까지 ‘종자보급소’ 3곳 설립 목표
전여농 토종씨앗사업단은 구례 말고도 함안, 횡성, 제주 등 전국 10여 곳에 채종포를 마련했다. 전여농은 이곳에서 받은 씨앗을 모아 올 연말엔 전국 3곳에 ‘종자보급소’를 만드는 게 목표다. 종자보급소는 씨앗을 보관하고 관련 자료를 구축해 농민들이 씨앗을 교류토록 하는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운동은 농민들끼리 좋은 씨앗을 서로 나눠 심던 전통문화와 공동체를 살리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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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토종씨앗사업단이 채종포에서 토종씨앗을 늘리고 종자보급소를 열려는 것은 내년부터 종자산업법에 따라 등록된 보호품종은 농민들의 자가 채종이 금지되기 때문이다.(옆 김은진 교수 인터뷰기사 참조) 심 단장은 “원래 씨앗의 주인은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인데 2012년부터 등록된 품종의 자가 채종이 금지된다”며 “토종씨앗은 이(규제)를 막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여농은 2003년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파시나’에 가입, ‘종다양성위원회’ 활동을 통해 토종씨앗의 ‘가치’를 알게 됐다. 심 단장은 “인도, 남미 등지에서 종자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도 정부 보급종에 익숙해져 잘 모르는 사이 농민들의 씨앗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며 “우리 농업도 상업화돼 꽃이 피기도 전에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품종을 심어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농업이 상업화돼 경제성을 따지다보니 효율성이 높은 품종을 단작화해 결국 농업의 생물다양성도 사라져 버렸다. 
전여농은 2005년 남북교류 행사 때 가져온 북의 들깨를 통일텃밭에 심은 데서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귀농운동본부 등과 토종씨앗을 지키기 위한 네트워크 모임인 ‘씨드림’을 만들고 2008년엔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만원의 행복’을 통해 토종씨앗 기금을 만들어 ‘주먹찰 옥수수’를 심어 어린이집 등에 보급했다. 그리고 2009년엔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고 실태조사를 벌였다. 지난해부턴 ‘1여성농민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 단장은 실태조사를 하면서 토종씨앗을 텃밭에 심어온 할머니들이야말로 ‘씨앗 박사’임을 깨닫게 됐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씨앗 심는 시기, 기르는 방법 등 대대로 전해온 할머니들의 전통농법 지식을 배우기도 했다. 심 단장은 “종가집의 맏며느리였던 할머니가 다달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빨간 팥을 거피(껍질 벗김)해 힘들게 떡을 만드는 걸 본 친정어머니가 하얀 팥을 구해 줬다”는 이웃마을 할머니의 사연을 전하며 “할머니들의 씨앗엔 사연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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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운조루 앞 채종포 행사가 있던 날, 이 마을에 사는 정옥님(80세) 할머니한테 귀한 목화씨앗을 얻었다. 정 할머니는 집에 소중히 보관해온 목화씨를 가져다주곤 “친정어머니가 준 씨앗이여. 이걸로 솜 타서 이불 만들고 아들 두루마기 도포 만들었다”며 “보리가 익어 지금이 딱 심을 때여. 재에다 버무려 심어야 해”라고 귀띔해 줬다.

토종씨앗은 GMO 이기는 대안
토종씨앗 채종포에선 농약을 치지 않고 전통농법 그대로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의 노동력이 엄청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심 단장은 “GMO가 단작화, 규모화된 상업에 맞게 개발된 씨앗이라면, 토종씨앗은 태생적으로 전통농업, 텃밭농사, 가족농, 소농의 농법과 잇닿아 있다”며 “우리는 다국적 기업,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무너뜨리기 위한 대안으로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심 단장은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국민이 함께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종씨앗이 사라지면 GMO 종자를 거부하고 싶어도 대안이 없고, 국민 밥상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콩, 된장, 두부, 콩나물 등에 확실히 GMO 표시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도시텃밭에 씨앗을 심으면 꽃을 보고 직접 씨앗을 받는 것 등이 다국적기업에 저항하는 운동이 된다고 했다. 또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하는 ‘언니네 텃밭’ 같은 직거래 운동, 로컬푸드 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심 단장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토종씨앗을 소중히 지키는 또 한 명의 농부가 돼 달라”며 이런 제안을 했다. “지리산 둘레길 걷고 운조루 채종포에 풀 뽑으러 오세요. 그 밭에 자라는 풀은 약초에요. 효소로 담가도 돼요.”
올 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운조루 채종포에서 풀을 뽑으며 토종씨앗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휴가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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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 지키기는 식량주권 위한 대안”

팔기 위한 농사 아닌 먹을거리 중심 농사로 돌아가기

[인터뷰]김은진 전여농 정책자문위원 

전여농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김은진 원광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식량주권과 GMO를 이기는 대안이며 근본적으로 상품으로 팔기 위한 농사가 아닌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한 농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살아있는 씨앗, 그 자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진 교수는 GMO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해 온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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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의 의미는.
=
토종씨앗을 지킨다는 것은 씨를 받아 농사를 짓던 문화를 되찾는 것이다. 전통농업에선 그렇게 해왔다. 씨를 받아 농사짓는 문화가 사라진 것은 기업농 육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기업농은 다수확 품종, 개량종자로 단작(單作)농사를 짓는다. 단작농사는 도박농사다. 풍작이면 농사물이 똥값이고 흉작이면 (가격이 뛰어)수입 농산물을 들여오고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것은 식량주권(을 지키고)과 GMO를 이기는 대안이다. 근본적으로 상품으로 팔기 위한 농사가 아닌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한 농사로 되돌아가는 걸 의미한다.

- 종자산업법의 문제점은.
= 기본적으로 종자산업법에서 보호하고자 종자는 개량종자다. 가령 개량종자와 유사한 토종종자가 있다고 하자. 예를 들면 농민들이 자가 채종해 온 종자 가운데 가뭄에 강한 종자가 있고 이와 유사한 특성이 있는 개량종자가 있을 수 있다. 토종종자와 개량종자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종자산업법은 유사한 특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농민들의 자가 채종을 금지할 수 있다.

설사 법에서 (자가 채종을)일부 허용하겠다고 해도 시행되진 않을 거다. 그 이유는 이미 농민들이 씨를 받아 농사를 짓지 않고 있어서다. 물론 자가 채종 농민들이 늘어나면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토종씨앗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기업의 신품종(종자)이 있다 해도 농민들이 먼저 심었던 것은 규제하지 못한다. 품종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지적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다.

-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의 해외사례는.
= 인도 남부지역의 ‘나브다냐(Navdanya)’, 호주의 ‘시드 세이버스(Seed Savers)’가 대표적인 단체다. 인도의 나브다냐는 종자특허권을 확보해 농민들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던 다국적기업에 대항해 전통통자를 지키고 유기농업을 일으킨 운동이다. 인도 전역에 3곳의 씨앗은행을 운영하며 종자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급하고 있다. 호주의 시드 세이버스도 토종씨앗을 구하고 지키는 종자은행을 운영하며 여러 지역의 특성에 맞게 토종씨앗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소농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전통적으로 씨앗을 갖고 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고 점차 확대되는 방향이다.

 

크기변환_8-1 토종씨앗4.jpg크기변환_8-1 토종씨앗9.jpg크기변환_8-1 토종씨앗2.jpg크기변환_꼭 넣을 것(사진_황경의 기자).jpg

 

글= 황경의 기자 Kehwang@kdlpnews.org
사진= 정택용 기자 mipaseok@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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