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에 둘둘말린 ‘제철 채소 꾸러미’에 빠져들다

제철 채소 꾸러미 2013.04.27 00:38

  [김원의 리얼몽상] 

   팔당 고래실마을서 보내온 유기 채소에 몸도 마음도 건강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지속은 결국 마을 공동체도 지켜


 

 


우리집에는 매주 팔당 고래실마을에서 제철 채소 꾸러미가 온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노지에서 자란 그야말로 제철에만 나는 채소들은 그 자체의 오롯한 맛과 향을 품고 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돈을 준다고 달리 구할 수도 없을, 딱 적기에 먹는 채소의 단맛에 나는 홀딱 반해 버렸다.


모든 야채가 가장 맛있는 순간은 1년에 길어야 고작 몇 주다. 노지에서 자란 딸기의 제 맛은 늦봄 한 주다. 모과는 1년에 딱 한 번 공급된다. 향이 예술인 제주 금귤도, 가장 아삭한 상태의 열무도, 한동안 맛보면 다음해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온갖 김치와 장아찌, 피클, 효소 등이 발달하게 됐나 보다. 어느 나라든 때마다 '세시풍속' 같은 저장음식을 만드는 이유도 이런 순리 때문이다. 가장 맛있을 때의 감칠맛은 혀에 그리고 기억에 남겨야 한다. 땅에서 자란 과채가 늘 같은 맛을 지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대문명의 거대한 사기는 아닐까.


우리는 왜 먹는가


제철 채소의 맛을 알게 된 건 고작 1년 남짓이다. 그전에는 마트에서 샀다. 그 과채의 제철이 언제인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공산품 취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귀한 줄도 몰랐다. 그러다 광명으로 이사와 어쩌다 광명YMCA 생협 조합원(촛불)이 되면서 제철 채소를 먹게 되었다.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때마다 온갖 맛있는 걸 얻어먹게 된 몸이 절로 변하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얼마나 맛있는지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그 들쭉날쭉하게 생긴 야채들은 고유한 향과 질감을 갖고 정말 하나하나 알알이 영글어 있었다. 비와 햇볕을 받고 노지에서 자란 제철 야채가 가진 그 건강한 힘은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신문지에 싸여 온 봄날의 미나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큰한 음식이었다. 초고추장에 버무리기만 해도 아삭하고 향긋했다. 진정 맛있는 야채는 아무 양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신선할 때 얼른 먹어 주기만 하면 됐다. 사는 게 하도 힘들어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던 날도, 일어나 대충 씻어 먹은 완숙 토마토 덕택에 또 살아갈 힘을 얻었더랬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자신을 이룬다


때로는 한 주에 1만 원, 그것도 CMS로 결제하는 내가, 이렇게 거든 것 없이 물 한 번 준 적 없이 맛있는 채소들을 먹을 자격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양상추나 깻잎, 오이가 너무 맛있으면 황송하기까지 하다.


팔당 제철 작목반의 최용석, 노국환, 이홍건, 김상균 님이 길러서 보내주시는 꾸러미와 '꾸러미 편지'를 받을 때마다 참 고맙다. 그분들은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촛불님'들이 있어 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밤잠 못 자고 올 봄과 여름의 그 지독한 가뭄에 몇 번이고 시금치며 채소들에 물을 대느라 고생하신 것도 다 잊게 된다고 하신다.


물론 불편이 없는 건 아니다. 제철 채소 꾸러미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지만, 도시생활자에게는 결단을 요구한다. 야채 위주의 식단을 부지런히 차릴 것, 단 하나의 야채도 그냥 썩히지 않고 그때그때 다 먹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얼마나 부지런히 야채를 찌고 볶고 데쳐야 하는지 아마 살림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외식도 줄여야 한다. 야채가 썩어 나가지 않게 하려면 계획적인 식단을 짜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조리법을 나름대로 연구해야 한다. 귀찮을 수 있다. 손이 꽤 간다. 그러나 1년만에 나는 이 꾸러미에 완전히 빠졌다. 제대로 먹기 위해 조금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누가 내 밥상을 걷어차는가?


처음 생협에서 생활재들은 받아먹기 시작했을 땐, 아니 제철 채소 꾸러미를 처음 받았을 땐 난감하기도 했다. 도시생활자인 요즘 엄마들에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약간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편하고 싸고 좋은지!


첫째, 선택하지 않는 기쁨이 있다. 반복되는 자잘한 선택을 대폭 줄이는 것에서도 일상의 평화는 온다. 주어진 대로 먹고 활용하고 그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시장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다.


둘째, 물가 걱정을 줄이게 됐다. 수입 농산물과 관련된 '경제 뉴스'가 적어도 당장 내 밥상을 위협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기게 됐다.


셋째, 얼굴을 알고, 가서 만난 적 있는 사람에게서 직접 받아먹는 먹을거리는 자연히 사람 걱정으로 이어진다. 생산자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행복해야 나도 맛있는 걸 먹게 된다는 당연한 순리를 염원하게 된다. 이제는 하늘을 보며 날씨를 걱정하고 제철 작목반 분들을 생각한다. 다음 주에도 꾸러미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그 말없는 안부가 참으로 소중하다.


그렇지만 "연봉 천이백을 향해" "이렇게 재배한 건강한 농산물들을 누군가에게는 팔아야 한다는" 삶의 고단한 걱정들을 덜어드리는 건 역부족이다. 제철 채소 꾸러미의 소비자와 생산량이 훨씬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더 넓은 땅에 더 여러 가지 과채를 재배해서 농부님들의 생활에도 안정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도시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소비해 줘야 한다. 공산품 같은 폼나는 진열상품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포장과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그 본연의 참맛에 집중해 주려면 의지적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본연의 맛을 알아보는 능력을 많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자꾸만 농사와 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연스런 미각을 잃어버리게 하는 무수한 전략적 정책들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와 '수입'과 '이윤'들의 획책 속에서 공동체의 혀와 몸은, 누군가의 사적 이익을 위한 '음식물 쓰레기통'이 될 수도 있음을 미국산 광우병 의심 소 수입 논란은 경고했다.

   

나는 먹어야겠다, 살아야겠다


누가 이 소중한 밥상을 빼앗아 가려 하는가? "다른 데 가서 다시 유기농 하라"는 거짓말은 땅을 무슨 통조림이나 자판기처럼 말하는 새빨간 날조다. 유치원 아이들도 농작물 하나가 자라려면 땅을 고르고 땅심을 길러 주고 수많은 시간 공들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직접 길러 수확한 농산물은 이파리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대대로 농사지어 온 '고래실' 논들의 가치가 (비 한 번에 무너지는) 자전거 도로만도 못한 이 시대의 광기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궤변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땅의 자손이며 이 땅이 말없이 먹여 기른 자들이다. 임기 반년밖에 남지 않은 정권이 어째서 공동체의 뜻을 거스르며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계속 하는가?


나는 이 제철 야채 꾸러미를 포기할 수 없다. 정부의 강행 처리는 팔당의 몇몇 농가에 대한 정책이 아니다. 그 채소들을 먹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국민들에 대한 선전포고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나는 좀 먹어야겠다. 살아야겠다. 8월 6일을 전쟁터로 만들지 마라. 임기 6개월짜리 정부여, 제발 여기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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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로사, 문화평론가) 

데일리 서프라이즈, 위클리 경향, 월간 말, 경향잡지, 성서와 함께, 디다케, 민중의 소리, PD저널 등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드라마 보고 글 쓰며 산다.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서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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